[태원준 칼럼] 외로운 늑대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외로운 늑대

입력 2019-04-1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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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구팀이 찾아낸 외로운 늑대 테러의 3가지 특징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도 고스란히 갖고 있어
자살하려는 이들의 사전 신호 포착해 생명을 살려내듯이
외로운 늑대의 사전 신호에 주의 기울여야 예방할 수 있다


늑대는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보통 5~10마리가 몰려다니며 자기보다 덩치가 큰 짐승을 함께 사냥한다.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분비물로 꼼꼼하게 표시하고 침입자에게는 무척 가혹하다. 짝짓기를 위해 떠나든 경쟁에서 탈락해 쫓겨나든 무리를 벗어나면 늑대의 삶은 고달파진다. 무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수백㎞씩 홀로 이동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학자들은 전체 개체의 약 15%가 이런 ‘외로운 늑대’이며 무리 속의 늑대보다 훨씬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98년 ‘외로운 늑대 작전(Operation Lone Wolf)’을 벌였다. 인종차별 전단을 살포하고 히스패닉 저명인사를 공격한 백인우월주의 집단의 리더 알렉스 커티스를 체포하는 수사였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조직에 해가 되지 않도록 개별적으로 실행하라”는 지침을 내리며 “외로운 늑대가 돼라”는 표현을 썼다. 혼자 다니는 습성에 강한 공격성까지 갖췄으니 최선의 비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연락망을 감시하다 이 말을 포착한 FBI가 작전명에 차용하면서 ‘외로운 늑대’는 범죄·테러의 용어로 등장했다. 커티스의 늑대들은 외로움을 가장했을 뿐이었다. 말 그대로 배후 조직 없이 혼자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의 발호로 부각됐다. 두 테러조직은 끊임없이 서구의 외로운 늑대들을 부추겼다. 2010년 리온 파네타 미 중앙정보국장은 “외로운 늑대가 미국 사회의 최대 위협”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미 법무부는 사회학자와 범죄학자들로 팀을 구성해 과거 사건기록을 훑으며 외로운 늑대 유형에 포함되는 범죄를 추렸다. 작업에 참여한 2명이 결과를 분석해 2017년 ‘외로운 늑대 테러리즘의 시대: 새로운 역사’란 책을 펴냈다. 이들은 124명의 외로운 늑대를 찾아냈다. 시간 순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1940년 조지 메테스키였다. 해병대 출신 전기공이던 그는 뉴욕의 터미널 영화관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 폭탄을 설치하고 다녔다. 16년 동안 33개를 설치했고 그중 22개가 터져 15명이 부상했다. 도무지 잡히지 않아 ‘매드 보머(Mad Bomber)’란 별명으로 불리던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보편화된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이 발달했다. 1956년 검거하고서야 밝혀진 범행 동기는 직장에 대한 불만이었다. 근무 중 사고로 장애를 얻었는데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터뜨린 거였다. 1970~80년대 우편물 폭탄을 보낸 일명 유나보머,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청사 테러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범 등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법무부의 의도는 외로운 늑대의 공통점을 찾아내 예방에 활용하는 거였는데 쉽지 않았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도 있었고, 인종주의자도 있었고, 사회 부적응자도 있었다. 낙태나 환경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가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느슨하게나마 몇몇 특징을 추려냈다. ①이데올로기가 유일한 동기인 외로운 늑대는 없다. 대부분 개인적 불만과 분노가 결합해 극단적 행동을 촉발한다. ②정신질환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최소 40%는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물을 복용한 병력을 갖고 있었다. ③어떤 형태로든 범행의 신호를 보낸다. SNS에 글을 쓰든 누군가에게 말을 하든 범행을 암시하는 사전 행동이 상당수 사건에서 나타났다. ④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1960년대는 외로운 늑대가 5명, 관련 사상자가 11명이었는데 2010년대(이 책이 나올 때까지)는 35명과 275명이 됐다.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서 무차별 방화·살인을 저지른 이에게서도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 조현병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주민들이 7번이나 경찰 등에 신고할 만큼 폭력적인 사전 행동을 했으며, 사실이든 아니든 “임금체불”이라는 개인적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한국도 불특정인을 향한 외로운 늑대의 공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대학가에서 여성 6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50대는 정신장애 2급이었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못 받는다는 불만을 품은 채였다. 편의점에서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르고, 약국에 들어가 무작정 약사를 찌르고, 길에서 마주친 여성을 때려 숨지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소외된 곳을 살피고 격차를 줄이며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근본 처방이 이뤄져야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눈앞에 닥친 일을 막아낼 방법은 없을까. 미국의 외로운 늑대 리스트 124명 중 30명의 공격은 FBI가 사전에 파악해 범행을 차단한 것이었다. 시민들에게 “무언가 봤다면 말하라”는 주문을 구호처럼 되풀이했고, 이상한 징후를 발견한 이들의 제보가 테러 30건을 막는 데 힘이 됐다. 누군가를 의심해야 하는 일이기에 탐탁지는 않지만 생명이 걸린 문제여서 어쩔 수 없다. 자살하려는 이들이 사전에 반드시 보내는 신호를 포착해 죽음을 막듯이, 외로운 늑대의 신호를 감지하는 주변의 관심이 무고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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