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효숙 (8) 상처만 남은 부부… 난 다시 도망가기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강효숙 (8) 상처만 남은 부부… 난 다시 도망가기로

양가 어머니 두 분 모시고 살다 관계 무너져 엄마 집 구해 드려… 남편의 외도에 정리할 기회 줘

입력 2019-04-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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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돌봐주신 친정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뉴욕의 한 식당에서 찍은 사진. 어머니는 두 손녀딸을 돌봐 주시면서 많이 행복해하셨다.

생활이 여러모로 안정돼 행복의 조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할 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 삶은 나의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으나 친정엄마의 거취 문제로 남편과의 불화가 시작됐다. 아들이 없는 아쉬움과 설움을 갖고 살던 친정엄마는 시원시원한 막내 사위를 참 좋아하셨다. 사위가 마음 놓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라고 모든 살림을 다 해주면서도 늘 사위에게 고마워하는 분이셨다. 시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시어머니가 오시면서 우리는 양가 어머니 두 분을 모시고 살게 됐다. 진명여고 스케이트 선수를 지낸 시어머니는 야망도 꿈도 많았던 신여성이셨다. 친정엄마보다 나이도 14살이나 어리셨다. 엄마는 그런 사부인을 늘 깍듯하게 대하셨다. 시어머니가 거실에서 성경책을 읽거나 뜨개질하는 동안 엄마는 늘 부엌에서 바빴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양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뒤틀리고 요동쳤다. 괜스레 엄마에게 “그러지 말라니까요”하며 짜증도 많이 냈다.

하루는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시어머니가 퉁명스레 건네는 말이 엄마를 많이 아프고 서럽게 했다.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데 그 말을 듣는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배신당한 것 같던지, 그동안 쌓아뒀던 섭섭함과 엄마를 향한 연민이 분노로 바뀌어 남편에게 향했다. 우리 곁이 봄볕같이 따스하고 행복하다는 엄마, 먼 타국에서 자리 잡게 도와준 엄마를 그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누구도 건드리지 마라, 내가 엄마를 지킬 거야’ 하면서 상처받은 엄마를 어떻게 위로할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중국산 제품들이 무서운 기세로 일어났다. 우리는 홍콩의 거래처에서 중국 섬유를 수입하고 있었다. 미스터 시우(Siu)라는 거래처 대표가 미팅을 위해 몇 차례 뉴욕을 찾았다. 그는 우리 집에 와서 여러 차례 식사하며 친한 친구가 됐다. 나를 여동생 대하듯 하며 언제든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보증금을 빌리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을 받아 엄마가 머무실 아담한 집 한 채를 구입했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보란 듯이 엄마를 이사시켜 드렸다. 사위가 마련해준 집으로 알고 계셨던 엄마는 “이래도 되는 거니” 하면서도 무척 기뻐하셨다. 아들을 기다리다 본 늦둥이 막내딸이 자유분방해서 늘 애를 태웠던 엄마에게, 내가 해드린 최고의 효도 선물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남편과 나는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엄청난 상처를 주고받았다. 서로 담을 쌓았다. 사업도 남편은 한국, 나는 중국 쪽을 맡아 따로 했다. 급기야 1993년 남편의 외도 사실이 드러났다. 상대는 일을 잘해서 내가 뽑은 여직원이었다. 그는 1년 전 란제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연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이나 홍콩으로 출장을 가면 직원들과 함께 파티를 열어 거의 모든 직원이 알고 있었다고, 퇴직하는 직원이 내게 알려줬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외도를 의심해보긴 했지만, 모두가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모멸감을 느꼈다. 남편에게 관계를 정리하고 돌아오도록 2주의 시간을 줬다. 기다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이 소식을 들으면 무너지실 것 같았고, 언니들에겐 상의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남편에게는 경멸과 저주를 담은 편지와 이혼서류를 던져줬다. 두 딸과 함께 내가 그나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홍콩으로 떠났다.

정리=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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