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잘못된 환상에서 깨어날 때

국민일보

[길 위에서] 잘못된 환상에서 깨어날 때

입력 2019-04-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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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란 나라는 고난주간 성(聖)금요일에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법으로 방송 금지하는 곳이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는 지난 18일 이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을 전후로 클럽 영업이나 영화 상영이 제한된다는 독일 현지 뉴스와 함께 말이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독일 사회에 개신교 문화의 뿌리가 무척 깊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독일은 각 주마다 정해진 종교세를 거둬들인다. 부활절을 앞두고 마트와 거리 상점에선 부활절 토끼와 계란을 본뜬 초콜릿 등 관련 상품이 넘쳐난다. 하지만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 중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10%도 채 안 된다. ‘유럽교회는 죽었다’는 말이 한국교회 목회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베를린 출장 중 만난 한국인 사역자들에게 독일의 현실에 대해 들은 걸 요약해보면 이렇다. “독일인들은 교회에 열심히 모이지 않는다. 예배의 뜨거움을 느끼기도 어렵다. 하지만 수백년간 이어진 기독교가 삶 속에 녹아들어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예수처럼 사는 독일인들이 많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인들은 교회에 열심히 모이고 예배도 뜨겁다. 그러나 세상에선 정작 기독교의 영향력을 찾아보기 어렵다”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140년 전 기독교를 서양에서 받아들인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문화’라 부를 만한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부활절만 봐도 그렇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국인에게 부활절은 거의 의미가 없다.

특히 올해 부활절에 대한 언론 보도는, 갈수록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청 앞에서 드리던 부활절연합예배 등 대형 집회가 없었다 해도 부활절 행사에 대한 기사량이 과거에 비해 확 줄었다. 서울의 경우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지목한 단체의 대형 체육관 집회가 대표 행사처럼 보도된 경우도 있다. 존경받는 목회자들에게 예수 부활의 의미를 묻고 답을 듣는 인터뷰 등 비중 있게 다룬 기사를 찾기도 어려웠다.

이토록 냉혹한 현실은 아프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오랫동안 품어왔던 잘못된 환상 하나를 깨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주류이자 중심부가 되어야 한다는 환상이다. 해방 이후 역사를 보면 기독교 엘리트들이 기득권층에 적잖게 진출한 경우가 있었다. 때로 한국교회가 한국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긍정적 역할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독일이나 서구 사회처럼 기독교가 그 사회의 지배 문화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영향력을 키워보겠다고 어설프게 정치권력을 등에 업으려 기웃거리면 거릴수록,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더욱 하찮은 것이 될 뿐이다.

지금은 1400여년간 크리스텐덤(기독교왕국)을 누려온 서구 국가들도 기독교가 변방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대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복음의 능력이 단 한번도 그런 방식으로 발휘된 적 없었음을 수긍하는 건, 더 큰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서구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기존에 교회가 있던 자리에 안주하는 대신, 말씀대로 살아내는 삶을 통해 복음의 영향력을 지켜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영국에서 복음중심의 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는 목회자 팀 체스터는 ‘일상 교회’를 통해 일상에서 선교하는 것이 곧 교회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는 “주변부로부터 도래하는 하나님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대안적인 생활 방식과 가치관과 관계를 제시하는, 놀랍도록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

서구와 달리 기독교 문화라는 정신적 토대가 거의 없는 한국사회에서 교회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우리가 가진 복음을 입증해낼 수 있을까. 서구 교회와 신학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더라도, 결국 우리만의 길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과연 한국교회는 세상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해야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갈 수 있을까.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붙들고 살아내는 모습이 무언가 다르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이웃들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부활절이 뭐야? 교회는 어떤 곳이야?’라고.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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