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효숙 (9) 날 기다려주신 하나님 앞에서 그저 울기만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강효숙 (9) 날 기다려주신 하나님 앞에서 그저 울기만

감정표현이 풍부한 큰딸의 사춘기, 달라진 환경과 아빠의 부재로 고통… 신앙생활 시작하며 딸 이해하게 돼

입력 2019-04-25 00:04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큰 딸 수현이는 여러 면에서 나를 꼭 닮았다. 사춘기를 겪는 딸과 전쟁을 치르면서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딸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1994년 여름방학 때 두 아이를 데리고 홍콩으로 이주했다. 몇 년간 파트너로 일한 현지 회사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정착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삶은 녹록지 않았다. 한 달쯤 생활한 뒤 두 딸에겐 엄마의 비즈니스 때문에 홍콩에 머물러야 한다고 통보했다. 다른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큰딸 수현이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재미있고 즐겁게 하는 아이였다. 감성적이라 울 때도 심하게 울고 웃을 때는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리는 장난꾸러기였다. 아빠와도 서로 좋아 죽는 사이였다. 12살 아이가 하루아침에 아빠도 없이, 재미있게 지내던 학교 친구들도 없이 달라진 환경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는 나중에 알았다. 당시 나는 상처와 분노로 가득 차 딸의 마음을 헤아릴 틈도 없이 마음이 닫혀 있었다.

수현이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사춘기 반항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미국에 있는 아빠나 친구들과 통화하느라 우리 집 전화는 매일 통화중이었다. 무선전화기 3대를 부숴버렸다. 무섭게 화를 내면 아이가 순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루는 스쿨버스가 도착할 시간인데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갈기갈기 찢은 청바지를 입고 머리카락을 23개로 나누어 고무밴드로 묶은 파인애플 머리를 하고 뒤늦게 나왔다. 모든 짓이 날 괴롭히기 위해 하는 짓 같았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쪽지 돌리고 숙제는 밤 10시에나 시작하니 제대로 해낼 리가 없었다. 성적표는 대부분 C나 D였다. 미술 한 과목만 가끔 A+를 받아왔다. 부를 때면 몇 번씩 불러야 했다. 눈동자를 아래에서 위로 굴려 올리며 온몸으로 싫음을 뿜어내는 딸과의 전쟁이 반복됐다.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질 무렵 세상과 이렇게 담을 쌓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 새로 왔다고 동창 하나가 나를 친절히 대해줬다. 그 친구와 연락하면서 큰딸의 파인애플 머리를 얘기했더니 “녀석, 매우 창의적인데”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그때 알았다, 긍정의 힘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친구에게 마음이 열렸다.

친구는 내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웃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안 다녀”라고 답했다. 친구는 “니가 우습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네게 주시는 선물을 안 받으면 너만 손해잖아”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교회 나가서 기도하면 수현이가 착해질까.” “그럼, 바뀔 거야.”

나는 수현이가 바뀔 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이튿날 새벽부터 교회에 갔다. 마침 열린 사경회의 주제가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었다. 어쩜 내가 야곱하고 그리도 같던지, 그런 야곱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니 주체할 수 없이 울었다. 1주일간 사경회 내내, 야곱과 다를 바 없이 다른 사람을 속이고 남의 상처를 한 번도 돌아보지 못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를 부끄럽지 않다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저 울기만 했다.

40여년간 날 기다려주신 주님! 수현이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수현이의 아픔과 어찌할 바 모르는 황당한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나의 예쁜 딸을 이렇게 아프게 했다니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경험했다. 딸에게 무조건 엄마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미안하다고, 이제부터 너를 이해하려 노력할 테니 도와달라고. 어안이 벙벙해 하는 딸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딸도 울었다.

정리=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