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돈도 빼앗기고 절망뿐이던 ‘눈물의 2년’

국민일보

교회도 돈도 빼앗기고 절망뿐이던 ‘눈물의 2년’

목회는 영권(靈權)이다 <4>

입력 2019-05-0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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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철 목사가 1997년 경기도 수원에 교회를 건축한 후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교회건축의 기쁨은 잠시였고 건축과정의 문제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재정 집사가 나 몰래 교회를 매입한 목회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는 잔금을 내게 주지 않고 재정 집사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게 훗날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순진하게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교회 담보대출로 수표를 받고 등기 이전을 해주기 위해 법무사 사무실로 갔다.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넘긴 뒤 수표를 받았는데 교회를 매입한 목회자가 입을 열었다. “수표 좀 볼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보여줬는데, 그만 수표를 받아 채더니 문 앞에 대기시켜 놓은 차를 타고 도망쳐 버렸다. ‘아니, 목회자라는 사람이 지금 무슨 해괴한 짓을 한 거야.’

법무사 사무실의 등기 이전 절차를 중단했다. 그리고 서류를 가져왔다. 이런 사실을 노회에 보고했다. “김 목사, 당장 고소를 하시오.” 며칠 후 수표를 뺏어간 목사를 절도죄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수표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노회도 문제를 잘 풀어보자며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돈을 빌려주지 않아 불만을 품은 재정 집사를 접촉한 것이다. 그 후부터 수표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회도 중재한다고 했지만, 재산 욕심 때문인지 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노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목사, 교회를 매입한 목사와 이야기가 다 됐소. 수표와 교회 이전 서류를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 테니 수원 모 대학 주차장으로 오시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니 법무사 사무실이나 은행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허, 그러면 일 처리가 복잡해져요. 나만 믿고 나오시오.” “그럼 교회 열쇠와 서류를 가져갈 테니 뺏어간 수표를 꼭 가져오라고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고 서류와 열쇠만 가져오시오.”

주차장에 도착하니 노회 임원들이 한쪽에 서 있었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다가왔다. “교회 열쇠와 서류를 가져왔소?” “네, 여기 있습니다. 이제 뺏어간 수표를 주십시오.” 하지만 그는 돈은 주지 않고 숲 쪽으로 갔다. 또다시 당할 순 없었다. “다 드렸으니 돈을 주셔야 할 게 아닙니까. 세상에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내게 돈을 요구했던 재정 집사와 불만을 품고 교회를 이탈한 몇몇 신도가 뛰쳐 나왔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돈을 꺼냈다. “자, 김 목사. 돈 여기 있소.” 재정 집사가 나를 향해 돌을 들고 위협하더니 돈을 낚아챘다. 그리고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도, 재정 집사도 황급히 사라졌다. 혼자 나오라고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다리가 풀렸다. ‘아, 도대체 이게 무슨 망조란 말인가. 교회 건물과 열쇠는 저 사람에게 넘어갔고 돈은 재정 집사가 가져갔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목사가 됐다.’

수치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그때부터 빈털터리 상태에서 2년간 눈물 흘리며 경찰서와 검찰청을 오갔다. 속이 타들어 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돈을 사랑하며 안정된 삶을 위해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말이다.

내 잘못을 절대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주님께 항의했다. “주님, 왜 제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제가 잘못한 게 있단 말입니까.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정말 제게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어둠의 터널이 계속됐다. 한 달이면 끝나겠지 하며 보낸 시간이 2년이나 흘렀다. 내가 경멸스러웠다. 사방이 온통 어두움뿐이었다. 모든 게 싫었다. 빨리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광야에 던져진 존재처럼 모든 희망을 잃은 상황에서 마음 한구석에서 그럴싸한 생각이 떠올랐다. ‘2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죽자.’ 경기도 수원 칠보산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정말 죽으려고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마음의 분노 때문에 기도는 뒷전이었다. 혓바닥이 갈라지더니 기력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몸이 축 처졌다. 금식 17일째 되던 날이었다. 얼굴을 찡그린 채 힘없이 소나무길을 걷는 중이었다.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김 목사, 네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아느냐?”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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