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제 야망 아닌 주님 위한 목회하겠습니다”

국민일보

“이젠 제 야망 아닌 주님 위한 목회하겠습니다”

목회는 영권(靈權)이다 <5>

입력 2019-05-0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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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춘천 가나안교회 설경 사진.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는 1999년 춘천감사기도원장으로부터 이곳 부지를 받아 가나안교회를 설립했다.

“네가 왜 이 고통을 당하는 줄 아느냐.” 분명한 주님의 음성이었다. 1999년 10월 죽기 위해 금식기도를 했던 나는 아무런 답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또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십자가를 아느냐.” 입을 열지 못했다. “억울하고 부끄럽고 힘들지.” “흐흐흑. 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모르면서 어떻게 십자가를 전하는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느냐. 십자가는 잘못한 다른 사람을 위해 억울함과 부끄러움, 고통을 끝까지 참는 것이란다.” “오, 주님….”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가슴의 답답함과 어둠이 스르르 사라졌다. 미움도, 증오도 사라지니 가슴이 뻥 뚫렸다.

“주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목회에서 가장 큰 행복은 주님을 얻는 것입니다. 이제부턴 야망을 위해 목회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목회하겠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내가 꼭 붙잡고 있던 아집을 내려놓게 했다. 사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신 처절한 희생 앞에 내 안의 미움과 분노는 모래 한 줌, 아니 티끌도 안되는 것이었다.

“목사님, 금식기도를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금식기간이라도 오셔서 집회를 해주십시오.” 예전에 한두 번 갔던 춘천감사기도원에서 연락이 왔다.

금식 18일째 되는 날 기도원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주님을 다시 뜨겁게 만나고 십자가가 내 삶에 들어오자 강단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집회를 하던 중 20일이 끝나 죽을 먹었다. 기도원장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사님, 저희가 이 기도원 땅을 놓고 10년간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내가 준비된 사람을 보낼 테니 기다리라.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이 땅을 목사님께 주라고 하십니다.”

“네?” 지난 2년간 땅 때문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떠올랐다. “허허. 원장님, 제가 땅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혹시 부족한 제 설교에 은혜를 받으셨다면 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그 감정은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3개월간 냉정하게 기도해 보시고 그때도 맞다 싶으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도원 대지만 1만6528㎡(5000평)이 넘었다. 당시 시가로 60억원이었다. 일시적 감정에서 그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땅만 생각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났다. 토지대장은 더 이상 보기도 싫었다.

3개월 후 감사기도원에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 집회를 한 번 더 해주셔야겠습니다.” “그러죠.”

집회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기도원 원장님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확실합니다. 3개월간 기도를 했는데, 이 땅을 목사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원장님이 이 땅을 제게 주시면 원장님의 자녀들한테 버림받을 겁니다. 다시 기도해 보세요.”

그런데도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그 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주님, 도대체 이게 무슨 뜻입니까. 2년간 제가 땅 때문에 경찰과 검찰을 오갔습니다. 분명 저 땅을 제가 받게 되면 또다시 소송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기도 중에 주님의 다른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정말 이 땅을 제게 주실 생각입니까.” “예, 목사님이 어떻게 쓰시든지 드리겠습니다.” “제가 땅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것 아시지요. 그런데도 제게 주셔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드리라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자필로 제게 땅을 넘긴다고 명확하게 써주십시오. 제가 땅을 받게 되면 법인을 만들고 교회를 개척한 뒤 선교사역을 할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땅은 기도원 원장님과 딸 4명의 공동명의로 돼 있었다. 그중 2명은 내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찬성했지만 2명은 반대했다. 이는 재산권을 두고 복잡한 소송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유권 이전에 반대하는 딸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났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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