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부모님 폐 이식받은 20대 “걷지도 못했는데 이젠 운동도 가뿐”

국민일보

[And 건강] 부모님 폐 이식받은 20대 “걷지도 못했는데 이젠 운동도 가뿐”

국내 첫 생체 폐이식(2) - 오화진씨의 희망가

입력 2019-05-14 04:03
  • 네이버 채널구독 이벤트 당첨자 발표
지난 10일 전남 무안 국립목포대 캠퍼스에서 오씨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건강한 폐를 갖게 된 오씨는 올해 이 대학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특발성폐고혈압 3년 고통… 폐 혈압 올라 기능 잃는 난치병
의료진 노력·부모님 정성에 불가능했던 생체 이식 ‘기적’
부모님 폐 한쪽씩 받고 회복… 꿈꾸던 미술 공부하려 대학 진학
생체 폐이식 막던 시행령 바뀌어
“기약 없는 뇌사자 장기 대신 생체 폐 이식 훌륭한 대안”


지난 10일 전남 무안에 있는 국립목포대를 찾았다. 봄 기운이 완연한 남도의 캠퍼스에는 싱그러운 젊음이 넘쳐났다. 미술대학 앞 등나무 그늘 아래서 국내 첫 생체 폐이식 환자로 기록된 오화진(22)씨를 만났다. 기자와 동행한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직원과도 오랜만에 재회했다. 그는 화진씨 가족이 1년 6개월 전 생사의 갈림길에서 폐이식을 준비할 때 친분을 쌓았고 힘겹게 투병하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화진씨의 얼굴에서 병색은 찾을 수 없었다. 홍보팀 직원이 “얼굴에 살이 많이 올랐다”고 하자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수술 후 1년간 요양과 체력보충을 했고 올해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미술 공부를 위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폐이식 수술 후 가장 달라진 게 뭐냐고 묻자 “숨 쉬기가 너무 편하다”고 했다. 화진씨는 하늘을 보며 “깊은 숨을 내 쉬는 이 순간이 꿈만 같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진씨의 삶은 2017년 10월 21일 폐이식 수술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특발성폐고혈압’이라는 원인 모를 병마가 찾아온 2014년부터 3년여간 그와 가족은 긴 어둠의 터널 속을 헤매야 했다.

특발성폐고혈압은 특별한 이유없이 폐동맥의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에서 폐로 피를 보내기가 힘들어져 숨 쉬기 어렵게 되는 희귀난치병이다. 숨이 차서 몇발작 걷기 조차 힘들고 화장실 한번 다녀오는 데도 중간에 서너번 멈춰서야 했다. 폐기능 상실로 결국 심장 기능까지 떨어져 언제든 급성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실제 2016년 7월 화진씨의 심장은 한번 멈췄고 심폐소생술을 통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다시 심정지가 온다면 소생 확률은 20%에 불과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늘 그녀 곁에 서성대고 있었다.

화진씨에게 유일한 희망은 폐이식뿐이었다. 2017년 7월 뇌사자 폐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등급이 낮아 순서가 돌아올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뇌사자 장기 기증이 턱없이 모자란 현실에서 폐의 경우 다른 장기에 비해 기증을 더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암울한 상황에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친척의 조언으로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선 한국과 달리 생체 폐이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국내에선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기증받아 이식할 수 있는 장기가 6개(신장, 간, 골수, 췌장, 췌도, 소장) 뿐이었고 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아빠 오승택(57)씨와 엄마 김해영(51)씨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폐 일부가 아닌, 전부를 떼 주고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국내 장기이식 규정에 가로막혀 진행이 어렵게 되자, 일본 원정이식까지 계획했다. 화진씨의 안전한 이동이나 수억원에 달하는 수술 비용 등이 부담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부모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려 “딸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체 폐이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기도 했다.

의료현장에서 뇌사자의 폐를 기다리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생체 폐이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화진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현행 법규상 불법이지만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화진씨를 살리기 위해 병원과 관련 학회, 정부 기관에 보고하고 생체 폐이식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한 단계씩 설득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기 10일 전, 병원으로부터 화진씨의 생체 폐이식이 가능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딸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의료진의 노력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8시간 넘는 대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료진은 화진씨의 망가진 양쪽 폐를 전부 잘라내고 아빠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과 엄마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각각 떼어내 옮겨 심었다.

폐는 오른쪽은 3개, 왼쪽은 2개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폐암 환자들이 폐 일부를 잘라내고도 정상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생체 폐이식은 기증자 2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폐기능 상실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 안전한 수술법이다. 다만 간처럼 떼어낸 자리에서 다시 자라나진 않는다. 뇌사자의 경우는 양쪽 폐 전부를 떼내 이식한다.

부모님 폐 일부를 이식받고 제2의 삶을 사는 오화진씨(왼쪽)가 지난해 8월 가족과 함께 떠난 일본 홋카이도 여행에서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오화진씨 가족 제공

화진씨는 건강을 회복해 퇴원한 뒤 2개월에 한번씩 서울아산병원에서 건강체크를 하고 있다. 화진씨의 건강을 살펴온 흉부외과 최세훈 부교수는 13일 “화진씨가 이식받은 폐의 기능은 완전 회복됐고 흉부X선, 폐기능 검사에서도 모두 이상 없다”고 말했다. 폐이식 환자의 경우 폐렴 등으로 인한 위급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안정적 경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

최 부교수는 “다만 화진씨는 엄마·아빠의 아래 폐 2조각만 갖고 있는 상황이다. 또래의 정상 폐기능을 100%로 봤을 때 50~60% 수준이지만 일상생활이나 가벼운 운동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엄마·아빠의 경우 아래쪽 폐를 떼 줬기 때문에 대략 15% 정도의 폐기능 저하를 보이는데, 이 또한 등산 등 신체활동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설명했다.

화진씨는 수술 전 “다시 건강을 되찾으면 친구, 가족과 비행기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었다. 아팠을 땐 2시간 이상 비행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폐가 망가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냈다.

그 소원은 이뤘을까. 화진씨는 “작년에 부모님과 베트남,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며 “두 번의 생명을 준 엄마·아빠께 너무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또 “앞으로 절대 아프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미술 디자인 쪽에서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엄마·아빠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빠 오승택씨는 “생체 폐이식이 화진이 한명을 살리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라 폐이식이 아니면 치료 방법이 없어 기약없이 뇌사자의 폐를 기다리다 죽어가는 모든 말기 폐부전 환자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진씨 사례를 계기로 정부는 장기이식법 시행령을 바꿔 지난해 10월부터 폐를 생체 이식 가능한 장기에 포함시켰다. 생체 폐이식은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200명 이상의 말기 폐부전 환자들(지난 3월 기준 249명)에게 새 희망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 뇌사자 폐를 기증받으려면 평균 4년(2016년 기준 1456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생명을 줄 뇌사자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다 결국 숨져간다.

폐의 특성상 다른 장기에 비해 이식 가능성도 낮다. 2017년 대한의학회지(JKMS)에 발표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국내 뇌사 기증자의 12.9%에서만이 폐이식이 가능했다. 신장(93%) 간(86%) 심장(27%) 등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

최 부교수는 “뇌사가 발생하면 폐가 먼저 망가지며 폐부종이 쉽게 발생한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환자에서는 항상 폐렴의 위험이 있어 다른 장기 보다 손상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폐나 심장의 경우 흉곽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유족들이 간 콩팥 등 다른 복강내 장기에 비해 기증을 잘 안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선 화진씨 이후 부모-자식간 생체 폐이식 가능 사례가 한 차례 더 있었지만 도중에 뇌사 기증자가 나와 최종 실행되진 않았다. 다른 의료기관에선 아직 시도 사례가 없다.

화진씨의 생체 폐이식을 집도한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부모나 형제 등 2명의 기증자가 있어야 하는 생체 폐이식은 뇌사자 폐이식이 불가능하거나 환자 상태가 극히 중한 경우(뇌사자 기증을 기다릴 수 없을 때)에 마지막 수단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체 폐이식은 가족간이나 일반인 사이에서도 많이 이뤄지는 생체 간이식과는 달리 일반화할 수술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 부교수는 “특히 10세 이하의 장기 기증은 1년에 20건이 채 되지 않는 등 소아 장기 기증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4, 5세 환아들이 자신에게 맞는 뇌사 폐 기증자를 만날 가능성은 1년을 기다려도 거의 없다”면서 “이들에게 생체 폐이식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