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그렇게 부모가 된다

국민일보

[이지현의 티 테이블] 그렇게 부모가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구멍 숭숭한 믿기 어려운 이불이 아니고 포근하고 가벼운 솜이불이어야

입력 2019-05-1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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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태어나면서 부모란 이름을 얻게 된다. 처음엔 누구나 미숙하다. ‘갓난아기’가 있듯 아기가 태어날 때 남녀는 ‘갓난엄마’ ‘갓난아빠’로 다시 태어난다. 갓난아기는 부모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갓난부모 역시 미흡한 점이 많고 연약한 존재이다. 다만 자녀와 함께 고군분투하면서 부모라는 이름에 한 발씩 다가간다.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다.

부모가 되기까지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혈연보다 자녀와 함께한 시간이 부모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잘 담아낸 영화가 있다. 2013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이다.

약간 어리숙하지만 착한 아들 게이타,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 미도리와 함께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건축가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료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환경과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친자 류세이의 가족들을 만난다.

료타는 핏줄이니 어떻게든 금방 서로 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금까지 키운 아들 게이타를 보내고, 친자 류세이를 데려온다. 기른 정보다 혈육을 선택했지만, 낙관적인 예상은 빗나간다. 아이들은 키워준 부모를 그리워했고, 부모 역시 기른 아이를 그리워한다. 가족이란 핏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과 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주인공 료타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면서 진정한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담았다. 아버지도 실수의 반복을 통해 아버지스러움으로 성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이 있어야 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제작하게 된 이유도 자신의 딸이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라고 인사한 것에 충격과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창조주는 부모에게 자녀의 마음 그릇을 구워내는 특허를 주셨다. 한 사람이 태어난 후 20~30년 동안 살아가는 가정은 사람의 ‘마음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와 같은 곳이다. 자녀의 마음 그릇은 부모에 의해 단단하고 커질 수도, 금이 가거나 깨질 수도 있다. 마음 그릇이란 바로 ‘나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인 자아 정체감과 동일 선상에 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인 자아 정체감을 형성시키는 일이 바로 마음 그릇을 잘 구워내는 것이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란 자양분을 받지 못하고 과잉보호와 억압 속에 성장한 자녀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남을 사랑하는 법,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어렵다. 우린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만큼 부모란 이름에 다가가게 된다.

소설가 박완서는 부모는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땐 언제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불은 아침이면 개어놓고 나가지만 지치면 돌아와 덮고 쉴 수 있다. 이불은 욕심이 없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불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면 감싸줄 뿐이다. 박완서는 2008년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나이에, 머지않아 증손자 볼 나이에도 지치거나 상처받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이불 속에서 몸을 태아처럼 작고 불쌍하게 오그리고 엄마, 엄마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서럽고도 서럽게 엄마를 찾아 훌쩍인다면 누가 믿을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는 그리운 존재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구멍이 숭숭 나서 믿기 어려운 이불이 아닌 포근하고 가벼운 솜이불이어야 한다.

우린 저마다 부모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서 서울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한 후 아들이 눈길에 남긴 발자국을 보며 눈물로 아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에서처럼 어린 것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항상 옆에서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부모님의 어깨가 좁아지고 힘없는 존재가 됐을 때, 우리의 어깨를 내어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부모님이 나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실 때, 우리는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지현 종교2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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