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푯말로 선 사람들

국민일보

[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푯말로 선 사람들

입력 2019-05-1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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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정쟁에 휘말리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단테 일리기에리는 라벤나로 망명해 남은 생을 보냈다. 불후의 명작인 ‘신곡’은 바로 그곳에서 탄생했다. 신곡의 첫 문장에는 길을 찾는 자로서의 그의 자의식과 쓸쓸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나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있었노라.” 사람은 누구나 길을 찾는다. 지레 길 찾기를 포기하고 세상의 인력에 이끌려 되는 대로 흔들리며 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가끔은 영문 모를 그리움에 마음이 뒤숭숭해지기도 한다. 흔들림조차 없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목석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능동적으로 자기를 형성하든 수동적으로 형성되든 마찬가지다. 지금의 나는 인생길에서 나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과 상황이 빚어낸 작품이다. 하나님이 그 과정 가운데 개입하셨음은 물론이다. 우리 앞에 당도하는 시간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한정된 시간을 살아야 하는 인간은 자기 생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필요한 이들이 있다. 눈 밝은 길 안내자들이다. 옛사람은 눈밭 위를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라 일렀다. 그것이 뒤따르는 사람들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길 안내자 혹은 푯말로 선 이들을 일러 우리는 스승이라 부른다. 좋은 스승은 우리를 참의 길로 이끌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숭고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스승은 자연의 이치와 삶의 도리를 깊이 이해하고 사람됨의 길로 제자를 이끈다. 그런 스승을 만난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스승을 자처하나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진리로 이끌기보다는 미리 쳐놓은 그물 속에 가둔다. 사람들의 영혼을 도둑질해서 자기의 지배 아래 두려는 것이다. 그들은 따르는 이들의 가슴에 거룩함의 열망과 따뜻한 사랑을 심어주기는커녕 그들 속에 깃들어 있는 탐욕을 부추김으로 그들을 오염시킨다. 참 스승은 지배하려 하지 않지만, 거짓 스승은 지배하려 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고통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면 스승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스승은 제자들의 길을 대신 선택해주지 않는다. 그의 선택을 지켜보면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려 할 때마다 일깨워줄 뿐이다.(사 30:21) 좋은 스승은 질문하지 않는 제자를 굳이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난 질문에는 성심껏 답해준다. 그리고 제자 속에 잠재돼 있지만 아직 구현되지 못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호명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나의 담임선생님은 졸업을 앞둔 모든 제자들에게 상장을 수여했다. 성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80명에 이르는 제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적합한 상을 주었다. ‘감투상’, 내가 이제껏 받아본 상 가운데 최고의 상이었다.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상의 기억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지레 포기하지 못하도록 나를 지켜주는 보루였다.

좋은 스승은 때로는 준엄한 꾸지람으로 제자들의 정신을 깨운다. 우리가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나른하고 나태한 삶에 빠져들 때 스승은 죽비를 들어 우리를 두드린다. 애정이 깃든 꾸지람은 영혼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꾸짖어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을 때 인생은 적막해진다.

그러나 스승은 무엇보다도 본을 보이는 존재이다. 예수는 대야에 물을 떠다가 허리에 수건을 두른 채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후에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이르셨다. 적막한 인생길이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그 뜻을 받들며 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낯선 인생길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푯말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고마운 일이다.

‘스승의 날’이 곤혹스럽다며 차라리 그날을 없애 달라고 청하는 이들도 있다. 진정한 권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각박한 시대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런 성찰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스승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종교인 가운데 그런 이들이 특히 많다. 이래저래 민망한 스승의 날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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