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전체가 쉽시다” 안식월 선언… 한 달 후 교인들은 떠나지 않았다

국민일보

“교회 전체가 쉽시다” 안식월 선언… 한 달 후 교인들은 떠나지 않았다

성도 없는 교회서 5년 만에 자립… 제주새예루살렘교회

입력 2019-05-1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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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새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지난해 7월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영광의 문 예배’를 드리고 기념촬영을 했다. 제주새예루살렘교회 제공

제주에서 폐쇄 직전의 교회를 맡아 5년 만에 자립을 일구고 부산과 서울에 기도센터까지 세운 목회자가 있다.

고웅영(49)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는 2005년 교회개척의 사명을 안고 제주에 왔다. 하지만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삼남연회 제주지방회는 교회개척에 난색을 보였다. “기존 교회도 어려운 마당에 작은 교회가 또 생기면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고 목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름만 있고 목회자가 없는 교회라도 맡겠습니다.” 제주지방회 임원들이 난색을 보이다 제안했다. “그럼, 2년째 목회자가 없는 사고 교회라도 맡겠습니까.” 새예루살렘교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 목사는 “2005년 4월 부임한 제주감리교회는 예배당은 물론이고 성도도 없는 ‘페이퍼 처치’였다”면서 “예배처소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건물주의 부도로 폐쇄된 제주 연동의 한 교회를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교회 위층은 안마시술소, 술집이었다. 고 목사는 “사라질 뻔한 교회를 영혼구원의 전초기지로 세우기 위해 매일 공원에 나가 복음을 전했다”면서 “10여년 전만 해도 제주 사람들은 전도지를 받고 내 앞에서 보란 듯이 갈기갈기 찢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첫 번째 전도된 성도부터 네 번째 성도까지 모두 알코올 중독자였다”면서 “그들을 돌보며 인간의 밑바닥, 중독자의 내면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 목사는 2008년 기도 중 새예루살렘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9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처소를 옮기라는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무속 신앙에 찌든 건물주들의 답은 같았다. “단란주점은 돼도 교회는 안 된다” “같은 건물 안에서 석가모니와 예수님이 싸우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다. 제주시청 부근 이도동 건물에 어렵게 터를 잡았다.

그는 “예배당을 옮기고 새벽기도를 하는데 이사야 62장 10절 ‘성문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을 주셨다”면서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형태의 전도를 원하신다는 생각에 그해 9월 제주시청 만남의광장과 부근 버스정류장에서 전도설교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매주 토요일 시내버스가 오가는 버스정류장에서 설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귀신 들린 여인이 와서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고 목사는 “예수님을 전하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가방을 집어 던지거나 와서 때리곤 했다”면서 “신기하게도 그들은 복음 앞에 공통적으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맞지’라고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며 웃었다.

2년간 거리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직접 전도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거리 전도를 시작한 후부터 성도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어요. 이것은 성경의 법칙인데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심었다면 다른 쪽에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깨닫게 됐어요.”

교회 이전 후 제주 복음화를 위한 12시간 연속예배, 이스라엘과 북한을 위한 중보기도를 시작했다. 탈북민 청년 전도캠프도 열었다. 2013년 추수감사주일부터 부활절 성탄절 등 주요 절기마다 제주지역 기도자들과 함께 24시간 연속 예배를 드렸다.

고웅영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는 “1인 유튜브시대가 됐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 교회 개척의 두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고 목사는 2014년부터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교회 전체가 안식월을 갖고 부산 서울에 기도센터를 세운 것이다. 그는 “목회 10주년을 맞아 안식월을 좀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인 전체가 쉬자’는 제안을 했고 성도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면서 “혹시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그 교회가 좋다면 그곳에 남아도 좋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새예루살렘교회는 2014년 7월 31일부터 1개월간 문을 닫았다. 교인의 이탈은 없었다. 2015년 9월 부산에 거주하는 성도들의 요청에 따라 해운대에 기도센터를 세웠다. 지난 1월 서울 강동구에도 기도센터를 만들었다.

예배는 매주 카카오TV로 실시간 중계하는데 월요일엔 부산에서, 화요일엔 서울에서 고 목사가 직접 성경공부를 진행한다. 2016년 3월부턴 ‘영광의 문 예배’(NJGG, New Jerusalem Gate of Glory)라는 이름으로 매달 1회 제주의 12개 항구를 돌며 항구예배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제주는 침략과 압제, 착취로 억울한 피를 흘렸던 비극의 땅”이라며 “동시에 인신 제사 등 우상숭배로 스스로를 더럽혔던 불신의 땅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배를 통해 이 어둠의 문화를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주로 들어오는 항구 12곳에서 ‘관문’을 정결케 하는 예배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선교사들을 위한 안식관도 운영했다. 퀴어행사 3개월 전부턴 매일 퀴어행사 예정지에서 기도의 씨앗을 심었다. 이처럼 역동적으로 영적 사역을 펼치다 보니 교회에는 간사 선교사 신학생 등 사역자들이 많다.

그가 제주라는 척박한 땅에서 100여명 규모의 교회를 일궈 지치지 않고 복음사역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영광의 예배에는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춤추는 사역, 목회의 희락이 있어야 해요. 목회자가 어떤 비난 모욕 저주에도 예수님처럼 상처를 안 받겠다는 마음의 결단, 선택을 단단히 해야 합니다.”

고 목사의 ‘도전’ 목회는 현재진행형이다. 넓은 예배공간 확보와 목회자 후보생을 위한 아카데미도 준비 중이다. 북한의 평양과 신의주에 기도센터를 세우는 꿈도 있다. 그는 “일단 주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무조건 순종한다”면서 “시도조차 안 해보고 고민하다가 끝나면 주님께서 지시하신 것인지 아닌지 모를 게 아니냐”며 웃었다.

제주=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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