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영미] 의붓딸 살해 사건, 가족을 버릴 권리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이영미] 의붓딸 살해 사건, 가족을 버릴 권리

입력 2019-05-16 04:01 수정 2019-05-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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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는 친부 집과 재혼한 친모 집을 오가며 학대를 당한 끝에 살해됐다. 친부는 자주 때렸다. 엄마 집을 찾아간다는 게 이유였다. 계부는 친모를 찾아온 의붓딸을 폭행하고, 폭언을 퍼붓고, 협박하고, 추행했다. 끝은 성폭행 시도와 보복살인으로 마무리됐다. 벽돌과 검은 비닐봉지를 매단 채 저수지 바닥에서 떠오른 작은 시신, 공중전화로 딸을 불러낸 뒤 13개월 아들을 안고 범행 현장에 동행한 엄마, 계부의 차에 올라타며 눈물을 닦던 CCTV 속 아이 모습, “엄마가 슬퍼할까 봐 걱정했다”던 주변 증언까지. 한 아이가 겪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 사건이 연이어 드러났다. 소녀의 짧고 고통스러웠던 삶은, 나 같은 방관자가 글로 읽을 때조차 자주 멈추고 심호흡을 해야 할 만큼 참담했다. 어떤 고통은 정말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놀라운 건 아이의 행동이다. 소녀는 네 번에 걸쳐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분명하게 알렸다. 9세 때인 2016년 친부가 폭력을 휘둘렀을 때 아빠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기관의 개입으로 친부는 접근금지 가처분 명령과 벌금형 유예 판결을 받았다. 친모네로 옮겨간 뒤에는 계부의 폭력을 신고했다. 2017년 계부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다시 친부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지난달 계부의 성폭력을 신고했다. 며칠 뒤에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계부가 심상치 않다”는 의붓언니의 연락을 받은 뒤였다. 아이는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애써서 소녀가 받아든 결과는 죽음이었다.

끔찍한 학대를 왜 몰랐을까. 그러니까 이렇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 의붓딸 살해는 우리 사회의 어느 음침한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아동 보호라는 감시의 그물망 밖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몇 년에 걸쳐 모두의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불행히도 가장 나쁜 시나리오가 겹치고 겹쳐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다. 어른들이 아무 일 안 한 것도 아니다.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친부가 때리면 친모에게, 친모네 집에서 맞으면 친부에게 보내는 것 말이다. 마치 덜 나쁜 학대자를 견디는 게 친부모가 생존해 있는 아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생존법이라는 듯. 그사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소녀는 차마 울어주지도 못할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동학대자의 다수가 친부모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7년 아동학대 사건 2만2367건 중 1만6386건(73.3%)이 친부모에 의한 학대였다. 압도적으로 높은 이 비율조차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건지 의문이다.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벌어지면 벌집 쑤신 듯 세상이 시끄럽지만 같은 잣대를 친부모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등짝을 때리고 베개로 누르고 억지로 밥을 밀어 넣는 식의 폭력을 모두 학대로 분류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선을 넘지 않는 친부모 폭력은 여전히 훈육으로 용인된다. 게다가 학대 아동의 80%는 자신을 학대한 부모가 있는 원가정으로 돌아간다. 친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원가정의 유지·보호가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재학대 가해자의 95%가 부모라는 건 놀랍지도 않다.

변화는 원가정이 절대선이라는 완고한 신화를 깨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가족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친부모 아닌 다른 선택지를 보장해줘야 한다. 가족 밖에서 생존이 가능할 때, 가족을 버릴 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아동 인권은 지켜질 수 있다. 친권을 제한하는 학대의 수위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친권이 권리가 아니라 제대로 이행 못 하면 처벌받는 의무라는 걸 부모들이 이해해야 한다. 어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공동체다. 핏줄로 묶였다는 이유로 탈출의 권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가족을 버릴 권리가 필요하다. 평등한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절실하다. 가정의 달에 해볼 만한 이야기 아닌가.

이영미 온라인뉴스 부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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