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압박에도 교회는 광주를 도왔다

국민일보

신군부 압박에도 교회는 광주를 도왔다

예장통합 총회, 계엄군 발포 하루 전 긴급 임원회 열고 광주 위한 모금 결정

입력 2019-05-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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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0일 예장통합 총회 임원들이 광주 시민들을 위해 모금하기로 했다는 내용(파란 선)을 보도한 ‘한국기독공보’의 같은 해 6월 7일자 신문. ‘6월 1일 광주 위한 기도일’로 지켰다는 제목도 보인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한국교회가 대대적인 모금을 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교인들은 신군부의 감시와 탄압 아래서도 거액의 성금을 모았고 직접 광주를 방문해 전달했다. 이들 교회의 용기 있는 행동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금을 주도한 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였다. 예장통합은 계엄군의 집단 발포 하루 전인 1980년 5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총회 본부에서 긴급 임원회를 열고 광주 시민을 위한 모금을 결정했다. 예장통합 전북노회는 앞서 광주 상황 보고서를 총회에 제출했다. 회의에선 6월 1일을 ‘광주를 위한 기도일’로 정했다.

예장통합 교단신문인 ‘한국기독공보’ 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던 이기환 장로는 15일 “회의에선 광주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며 교회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 “총회 총무였던 성갑식 목사가 교단의 적극적 대응을 강조했고 모금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교회가 광주를 위한 공개 모금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예장통합 등이 입주한 기독교회관에는 장갑차가 배치돼 있었다. ‘군인들이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져 광주 시민들을 위한 모금은 ‘폭도’들에 동조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하지만 총회의 결정에 교회들은 즉시 응답했다. 닷새 후인 25일 주일에 광고를 했던 교회도 많았다. 서울 안동교회는 모금 광고가 실린 주보가 검열을 당했다. 교회는 “오늘 예배 시간에 광주 사건들의 구호를 위한 헌금을 함께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실었다. 하지만 주보가 배포될 때는 이 내용이 지워졌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유경재 목사는 “당회는 광고를 싣기로 결의했지만, 외부의 힘이 작용하면서 지워졌을 것”이라며 “그때 교회가 속해 있던 서울노회도 시국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내자고 결의하는 등 국가 혼란을 막기 위해 교회가 나서자는 분위기가 컸다”고 말했다. 그는 “총회가 용기 있게 결의했고 교회들도 소신 있게 모금에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박치순 당시 예장통합 부총회장은 어렵게 모금한 구호금을 들고 28일 광주를 방문했다. 그는 기독교광주사태구호위원장 한완석 목사를 만나 1차 구호금을 전달했다. 예장통합이 전달한 전체 구호금은 2000만원에 달했으며 이는 그해 9월 서울 영락교회에서 개최한 65회 정기총회 때도 보고됐다.

2000만원은 당시 예장통합 총회 1년 예산(1억3000만원)의 15%를 웃도는 큰 금액이었다. 총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데도 힘썼다. 5월 30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서울지역 목회자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광주보고회를 갖고 함께 기도했다.

최상도 호남신학대(역사신학) 교수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용기를 낸 교회의 역사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게 안타깝다”면서 “이제라도 이들 교회에 대한 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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