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꿈은 크게 꿔라”… 24명 출석 교회, 3개월 만에 100명으로

국민일보

“전도 꿈은 크게 꿔라”… 24명 출석 교회, 3개월 만에 100명으로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의 전도, 너무 쉽습니다 <2>

입력 2019-05-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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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가 지난 4월 부산 강서구 교회에서 열린 ‘150배 성장세미나’에서 참석자들에게 불신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세계로교회 제공

5%의 꿈은 이루기 어려워도 30%의 꿈은 이루기 쉽다. 5%를 꿈꾸는 자는 항상 쩨쩨하게 생각하지만 30%를 꿈꾸면 생각의 혁신이 일어난다. 기업을 보라. 5% 성장 목표를 세울 땐 전기 사용과 인건비를 줄이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하지만 30% 성장을 목표로 삼으면 그것만으론 안 되기 때문에 혁신적인 사고로 혁명을 일으킨다.

전도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한 명 전도하여 배가하자’와 같은 구호로는 성장할 수 없다. 전도대상자로 한 명만 고르려 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이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 그래서 전도를 할 수 없다.

첫 예배 때 100명 출석 선포

1993년 세계로교회에 부임하고 성인 신자 24명과 함께 첫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선포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100명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100명이 모이도록 전도합시다.”

내가 이처럼 담대하게 선포한 것은 과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경남 김해 무척산기도원 아래 생철리교회라는 작은 농촌교회에서 교회학교를 맡았다. 뭘 모르는 상태에서 교사를 맡다 보니 30명 모이던 아이들이 17명으로 줄었다.

전도사님이 나를 불렀다. “손 선생이 반을 맡고 난 뒤 아이들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믄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아이들을 불러놓고 설교를 했다.

“오늘 17명이 나왔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선포하면 다음 주에 배가 될 거야. 다 같이 ‘아멘’ 하자.” 주중에 열심히 전도하니 그다음 주에 정확히 34명이 나왔다. “봤지. 정말 기도한 대로 주님이 이뤄주셨다. 다음 주는 68명이다. 알았지.”

아이들과 통성으로 기도하고 주중에 열심히 전도했다. 그러나 주일 새벽부터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68명은 고사하고 17명조차 나오지 않을 듯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도무지 교회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주위 시선을 피해 어른 예배에 나갔다.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전도사님이 불렀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 선생, 아까 주일학교 예배에 왜 안 왔어? 오늘 몇 명 왔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68명이 나왔어요.” “네?”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반은 믿음으로, 반은 협박하듯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구하면 인간은 약할지라도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시는구나.’

안 되는 이유만 나열하는 성도들

예배 후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한 분이 나를 붙잡았다. “전도사님, 그렇게 했다가 안 되면 우짤라꼬 그러십니꺼. 우리 교회는 100명이 앉을 자리도 없다 아입니꺼. 글고 이 동네 사는 사람이 100명도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로 100명을 모읍니까. 절대 안 됩니더.” “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전도에 매진합시다.”

젊은 집사 두 사람을 불러 중학생 이상으로 교회에 한 번이라도 왔다간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달라고 했다. 대략 100명이 됐다. 그때부터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할 것 없이 강단 뒤로 가서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기도했다.

작은 교회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기도했던지 일주일이 지나자 동네에 소문이 퍼졌다. “이번에 오신 전도사님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고함을 그렇게 친다 카대.”

교인들 사이에서도 원망이 높아졌다. “고마 기도하려는데 전도사님 소리 때문에 도무지 시끄러워서 기도도 못하겠다카이.” 나의 간절함을 몰라주는 성도들이 속상했지만 참고 계속 기도했다.

밤에는 털외투를 입고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 집에서 잠자고 있는 영혼을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면 능히 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돌고 기도한 뒤 새벽 2시쯤 교회 강대상 뒤에서 눈을 붙였다.

3개월 후 100명이 함께 예배

교회 주변은 그린벨트로 35년간 묶여있었기 때문에 반경 4㎞ 안에 거주자가 거의 없었다. 비포장도로 길을 15㎞ 달려야 마을이 나왔다.

권사님 한 분, 할머니 두 분과 전도를 가기 위해 승합차에 탔다. 중간쯤 갔을까. 운전하는데 뒤에서 안 좋은 얘기가 들렸다. “동네 사람들도 안 믿는데, 부산 사람들이 왜 여까지 오겠나.”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니, 권사님. 지금 무슨 소리입니까.” “아입니더.”

조금 더 가니까 자기들끼리 또 수군거렸다. “머라 카노. 절대 안 온다. 니 같으면 오겠나. 안 온다 카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좀 조용히 하세요. 믿음 없는 소리 마시고.” “그래도 안 오는 것은 안 오는 거지요.”

전도에 도움은커녕 방해가 될 게 뻔했다. 차를 갓길에 주차했다. 문을 열었다. “내리세요.” “와카는데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기적이 일어날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 믿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함께 전도할 수 없습니다. 내리세요.”

“여가 어디라고 내립니꺼. 돈도 없고 차도 없는데요.” 3명을 모두 내려주고 혼자 전도하러 갔다. 그 일을 계기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 ‘못한다’는 부정적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우리에게 친히 보여주셨다. 도무지 교회에 나올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전도했는데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어, 그래요? 교회 한번 가볼까요.” 그렇게 교회에 나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3개월이 지나자 정확하게 10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됐다.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전도를 위한 대화 이렇게… 인간은 영적 존재다

전도자: 만약 인간이 죽고 난 다음 끝이라면 오래 살 필요가 있을까요. 환경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죽고 나서 이 세계와 어떤 관계인지도 모르는 무(無)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이 허무하지 않습니까. 만일 죽어서 끝이라면 좋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죽어서 끝이라면 말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육체적으로 한번 죽고 그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은 혹시 가축을 키워보신 적 있습니까.

대상자1: 네, 소와 개를 키워본 적 있습니다.

전도자: 개를 키워보시니 혹시 똑똑한 개 중에 아침에 일어나서 “오 할렐루야”하며 기도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대상자1: 네? 그런 개가 어디 있습니까.

전도자: 그럼 혹시 소 중에 아침에 일어나 “오 아미타불” 하는 것을 본 적 있나요.

대상자1: 그런 소는 못 봤습니다.

전도자: 그럼 역사 가운데 소 말 개 돼지가 하나님을 믿었다거나 부처님을 믿었다거나 종교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상자1: 없습니다.

전도자: 그렇습니다. 소 말 개 돼지는 수천년이 지나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신을 섬긴 역사가 없습니다. 역사 이래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모든 연구에서도 짐승이 신을 믿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소 말 개 돼지는 살다가 죽으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영혼이 없으니 죽으면 끝입니다. 영혼이 없기 때문에 영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종교나 내세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그 속에 영혼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죽고 난 다음에 다른 세상이 있을 거야’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기 때문에 영혼에 대한 개념과 내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박 선생님은 사람과 쥐의 DNA가 몇 퍼센트나 동일한지 아십니까.

전도자2: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5% 정도 되나요.

전도자: 아닙니다. 97% 이상 같습니다. 그래서 의약품을 개발할 때 쥐를 갖고 임상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랑우탄이나 원숭이를 갖고 실험하지 않을까요.

대상자2: 글쎄요.

전도자: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대상자2: 아, 그렇군요.

전도자: 쥐가 인간과 비슷하다면,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거나 예배드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대상자2: 쥐들이 어떻게 예배를 합니까.

전도자: 그렇습니다. 쥐 소 말 개 돼지는 어떤 경우에도 종교를 갖거나 내세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DNA가 비슷해도 짐승 속에는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산다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는 인간은 한국 미국 우간다 등 어디에 살든 종교를 갖고 신을 믿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말은 내세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1950~60년대 모험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브라질의 밀림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문명세계와는 단 한 번도 교류한 적이 없는 원시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조상신을 섬기고 해와 달과 숲의 정령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 보니 본능적으로 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합의하지 않아도 신을 섬기게 돼 있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왜 인간만 내세를 생각할까요. 인간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인간이 죄를 갖고 있고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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