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내국인 못 구해… 외국 인력 없인 공장도 농사도 올스톱”

국민일보

[르포] “내국인 못 구해… 외국 인력 없인 공장도 농사도 올스톱”

[연중기획] ‘나 혼자 아닌 우리’ <4부> ① 외국인 근로자 90만명 시대

입력 2019-05-20 04:10
베트남 출신 네이티 타이엉씨가 지난 16일 강원도 철원의 토마토 농장에서 잎사귀를 따고 있는 모습. 타이엉씨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통해 3개월짜리 단기취업비자(C-4)를 받아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철원=박상은 기자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우리 산업 현장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상당수 농가와 공장에선 외국인 노동자 없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모자란 일손을 값싸게 메우는 단계를 넘어섰고, 이제는 숙련된 외국인 인력을 상시적으로 확보하는 게 주요 과제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농촌 인력의 100%는 외국인”

“농촌은 일하러 오는 내국인이 한 명도 없어요. 저 사람들(외국인)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갑니다.”

지난 16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만난 박태진(51)씨는 “전체 인력의 100%가 외국인”이라고 했다. 9900㎡(약 3000평) 규모의 파프리카 시설하우스를 운영하는 박씨는 캄보디아인 3명, 베트남인 1명과 일한다. 또 다른 외국인 근로자 1명은 비자 기간이 끝나 3개월 뒤 다시 입국할 예정이다. 박씨는 “초기에는 내가 고용주니까 일을 시키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동반자, 식구라고 여긴다”며 “외국인과 함께 일하고 작업 환경을 맞춰가는 게 당연한 과정이 됐다”고 말했다.

볕이 뜨거운 오후 1시, 휴게실에 모인 근로자들은 동영상을 보거나 휴대전화 메신저를 하며 제각기 시간을 보냈다. 농기구와 사무용 가구가 뒤섞인 공간이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스물두 살부터 박씨 농가에서 일한 랭 완다(31)씨는 10년차 고참이다. 어느덧 관리자급이 됐지만 비전문취업비자(E-9) 최대 연장기간이 끝나 내년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완다씨는 “3~5년 정도 생각했는데 동생들 학비가 필요해 더 머물게 됐다”며 “추억이 많아 (농가 사람들이) 보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철원 농가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지역 농장주들은 가족단위 소규모 농사가 아닌 이상 모두 외국인을 쓴다고 전했다. 외국인을 채용하려면 내국인 구인 공고를 먼저 내야 하지만 실제 한국 사람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철원군 서면에서 5년째 파프리카·토마토 농사를 짓는 황익현(57)씨 부부도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근로자와 일했다. 현재는 외국인 4명이 근무한다. 수확 시기가 되면 인력을 1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황씨는 “내국인은 문의조차 안 오니 외국인을 쓸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없이 농사짓는 건 상상도 못한다”고 했다.

농가의 고민은 이제 내국인 채용이 아니라 성실하고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를 ‘붙잡는’ 일이다. 상시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도 때마다 인력을 수급하고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반면 이들 인력이 1년 내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유지에 드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철원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일이 없는 겨울에는 외국인 인건비를 충당하려고 막노동을 뛰는 농장주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일손이 바쁜 시기에만 인력을 지원하는 계절근로자 제도를 내놨다. 2015년 시범운행을 시작해 2018년까지 외국인 4127명을 농어촌 지역에 투입했다. 이렇게 들어온 외국인은 단기취업비자(C-4)를 받아 3개월만 체류한다.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비자 발급비나 항공료 등은 본인 부담이다.

현장에서는 일이 익숙해질 즈음 체류기간이 끝나다 보니 이를 6개월로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다. 계절근로자가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되면 다음 해 지역 전체 허용 인력을 삭감하게 돼 있어 다른 농가에 손해가 간다는 불만도 있다. 박씨는 “문제 있는 고용주에겐 징계를 내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력을 줄이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황씨 역시 “농사는 특정 시기에 적절히 대처를 못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국적 외국인 근로자 탄묘뚜씨가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의 차량용 용접기 제조업체 한국오바라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체류기간이 최대 4년10개월인 비전문취업비자(E-9)로 한국에 와 2년째 일하고 있다. 화성=최현규 기자

‘일상의 존재’ 된 외국인 노동자

공장에서는 쉴 새 없이 쇳소리가 났다. 작업장의 직원들은 저마다 맡은 일을 하느라 바삐 손을 놀렸다. 각기 다른 국적과 피부색이지만 작업복 안에선 구분이 어려웠다. 지난 15일 방문한 경기도 화성의 차량용 용접기 제조업체 ‘한국오바라’ 공장에는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베트남 등에서 온 34명이 일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일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우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죠.” 인력 관리 담당인 이재홍 관리부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미얀마 청년 에린조(32)씨는 이 공장에서 4년9개월을 일했다. 일이 손에 익은데다 한국에서 사귄 친구도, 쌓은 추억도 많지만 다음 달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 비자를 갱신하려 귀국했던 5년 전과 달리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다. 그는 아내와 다섯 살, 세 살짜리 자녀에게 생활비를 보내온 ‘기러기 아빠’다. 한국에 가족을 데려와 사는 것도 고민해 봤지만 그의 비자로는 방법이 없다. 돌아가 어떤 일을 할지는 고민 중이다. 같은 날 함께 돌아갈 친구는 모은 돈으로 버스를 사서 몰겠다고 했다.

아직 외국인이 적거나 보수적인 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겪어야 할 차별도 심하다. “대구나 부산에는 그런 사람들 많다고 들었는데 여긴 안 그래요.” 에린조씨는 능숙한 우리말로 이야기했다. 그는 화성에서 별다른 차별을 겪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익숙한 이곳 주민들은 외려 먼저 고향 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취업할 곳이 정부에 의해 무작위 배정되는 걸 생각하면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오바라는 외국인 사이에서도 근로조건이 좋기로 소문난 업체다. 급여 수준도 내국인과 거의 차이가 없고 성과급도 같다. 명절이면 내국인 직원과 스키장이나 해수욕장에 간다. 회사는 이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게 하고 비자 전환도 돕는다. 외국인 직원 중 차장으로 승진한 사례도 있다. 내국인 못지않은 대우를 받은 외국인들은 내국인이 꺼리는 잔업도, 덥거나 추운 작업장에도 적극 나선다. 이들은 생산 인력의 30% 이상이다.

하지만 일에 숙련되더라도 업체가 이들을 붙잡는 데는 제약이 많다. 고용허가제로 발급된 E-9 비자 기간은 최대 4년10개월이다. 재입국 갱신은 1번만 가능하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E-7-4)로 전환도 까다롭고 사업장별 허용 인원도 극소수다. 새 인력을 비자 전환하려면 기존 인원이 퇴사해야 한다. 에린조씨에게 ‘형’으로 불리는 정인영 주임은 “떠나보내기 아까운 친구들이 많다”면서 “일을 잘 배운 직원이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해도 기회조차 못 줘 안타깝다”고 말했다.

화성=조효석 기자, 철원=박상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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