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왜 나만?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왜 나만?

입력 2019-05-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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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난이다. 일평생 고난의 연속이다. 고난 없는 인생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인생은 없다. 고난 없는 곳이 이 땅에 있다면 딱 한군데, 무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통받지도 않는다. 죽어야 끝나는 고난은 죽을 때까지 풀어야 하는 숙제다. 그 과제 중 하나가 ‘왜 나만 고난당하는가’이다.

‘왜 나만 고난받는가’라는 물음 이전의 더 원초적 물음은 ‘왜 고난이 있는가’이다. 왜 착한 사람들은 한없이 고통받고 나쁜 놈들은 끝도 없이 잘 나가는지…. 신학적으로 묻는다면, 선한 하나님이 왜 악을 방치하고 허용하는지가 더 근원적 질문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시인 아삽은 악인이 형통하는 것 때문에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왜 나만 고난받는가’로 시작하는가. 내가 고난받기에 저 질문들이 생겨났고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 ‘그녀’ ‘너’ ‘그들’ ‘우리’도 아닌 ‘내’가 고난에 처했기에 물음이 시작한다. 형이상학적으로 고난의 존재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고난받기에, 이 고난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기에 캐묻는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지만, 고난에 관한 한 그 법칙은 틀렸다. 고난에는 외수없다. 어떤 고난도 없이 행복하게 살며 평탄하고 안정적 삶을 누린 듯 보여도 그의 삶의 여정을 조금이라도 들어볼라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만 몰랐을 뿐, 말 안했을 뿐, 다들 감추고 살고 속으로 삭이고 있을 뿐이다. 나 못지않은, 나보다 더한 아픔을 겪었다.

이 무자비한 법칙을 예수도 비켜 가지 않았다. 여기서 예수는 그냥 예수가 아니다. 수식어가 하나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예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다. 예. 수. 는. 못. 박. 혀. 죽. 었. 다! 존재론적으로는 하나님이자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인 분이다. 능력으로는 못 고칠 병이 없고 물리치지 못할 귀신이 없었으며 살려낸 사람도 여럿이다. 못할 일 없는 당신의 존재로도, 능력으로도 고난을 면제받지 못했다.

해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조롱한다. 남은 구원하면서도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고, 남의 고난을 덜어주면서도 정작 자기 고난은 피하지도 못하고 가뿐히 이겨내지도 못하냐고, 세상 모든 사람 구원한다면서 자기 하나 어쩌지 못하는 바보 중의 바보라고 놀린다. 여기에 구원의 비밀이 있다. 아무튼, 우리 주님도 받은 고난인데 무슨 수로 나 같은 사람이 고난 없는 인생을 바랄까. 아픈 진실이다.

일부 그리스도인은 신앙이 좋으면 고난이 없거나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믿음으로 거뜬히 잘 이겨낼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래도 시련이 연달아 닥쳐 믿음으로 견디기 힘든 시점에 이르면 당황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길을 택하곤 한다. 하나님을 탓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그러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좋은 일 생길 공산이 큰데 말이다.

믿음이 있어도 고난이 있고 오히려 믿음이 좋기에 고난에 시달린다는 증거는 욥이다. 욥은 하나님도 인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욥의 믿음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셨나 보다. 천상의 어전회의에 들어온 사탄에게 욥에 대한 칭찬을 한껏 하신다. 이후 욥은 한 개인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신자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모진 시험을 겪었다.

그럴 일 없겠지만, 하나님이 날 자랑 안 하셨으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을 자랑해도 말이다. 욥을 보니 그런 망측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신앙이 욥에 비해 형편없다는 게 참 다행이다. 믿음이 있건 없건, 딱 내 수준만큼 고난받는다.

고난 한 가운데 있으면 나만 보인다. 이 세상사람 다 행복한데 나 하나만 고통받는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내가 그랬다.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이리 힘든데 너는 왜 안 힘드냐며 괜히 화가 났다. 행여 웃는 이를 보면 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내가 남보다 더 이기적이고 옹졸한 인간이라서? 당신은 말하지 않았고, 나는 말했을 뿐.

한 사람이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지, 아직 멀었는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하나 있다. 고난 속에 나만 보이면 아직 멀었다. 고난받는 옆 사람이 보이면 그는 고난을 통과하고 있다. 그러니 끝도 없이 왜 ‘나만’ 고통 받는가라고 묻지 말고 ‘나도’ 고통을 받는구나 하는 자각으로 나아가고 종내에는 ‘너도’ 고통받고 있었구나 라는 공감으로 이어질 때 나도 살고, 남도 살린다.

김기현 목사(로고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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