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문록] 그때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국민일보

[반려견문록] 그때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입력 2019-05-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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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려견 보리이고 누나와 함께 산다. 내가 오기 전 누나는 몇 마리의 강아지들과 함께 살았다. 누나 나이 여덟 살이거나 아홉 살 무렵이니 오래전 일이다. 나도 들은 얘기지만, 그 시절엔 ‘반려견’이라는 말도 없었다. 일부 부잣집 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개들은 집 안이 아니라 마당에서 살았다. 그런 개들을 사람들은 흔히 ‘똥개’라고 불렀다. 요즘 말로 하면 ‘믹스견’.

어린 시절 누나 집에 살러 왔던 그 믹스견 똥개들 이름은 차례로 뽀삐, 예삐, 검둥이였다. 개들 이름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그 개들이 심지어 몇 살인지도 몰랐다고 누나는 내게 토로했다. 다만 뽀삐는 수컷이었고, 예삐는 암컷이었으며, 덩치가 송아지만 해서 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좀 얄궂은 검둥이 역시 수컷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개들은 지금 나처럼 사료를 먹고 살지 않았다. 식구들이 먹다 남긴 음식이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김칫국이든 된장찌개든 생선 머리토막이든 아무거나 섞어서 마당에 있는 녀석들에게 갖다 주는 일은 곧잘 누나가 맡았다. 어른들 몰래 하얀 맨밥이나 과자 조각, 간혹 아까운 흰 우유를 부어주기도 했지만, 대개는 짜고 맵고 가시가 있는 음식들이었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면 마당 한쪽에 놓은 밥그릇, 물그릇이 꽁꽁 얼어붙기도 했는데, 녀석들은 그걸 또 어떻게든 싹싹 먹어치우곤 했단다. 야속한 시절.

그나마 누나 가족들은 이들을 끝까지 키우지 못했다. 몇 개월 혹은 1~2년 함께 살았다. 그중 가장 슬프게 헤어진 건 뽀삐였다. 뽀삐는 몸집도 쪼끄마한 것이 집 앞에 사람이 지나가기만 하면 요란하게 왕왕 짖어댔다. 어른들한테 구박을 받으면서도 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단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해도 녀석의 소리는 꽤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어느 날 뽀삐는 건강이 안 좋다는 길 건넛집 아저씨에게 팔려갔다. 자전거나 트럭에 쇠창살로 된 우리를 매달고 주택가 골목골목을 다니는 개장수들이 “개 삽니다, 개 파세요.”라고 확성기를 틀어대던 시절. 여름철 수박이나 중고 가전을 사고팔듯 사람들이 기르던 개를 내다 팔고 샀다고 했다. 그 개들이 모두 어디로 실려 가는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만했다고. 아아, 야만의 시절.

어린 누나와 자매들이 울어댔지만, 당시 어른들에게 그런 일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개 한 마리쯤이 뭐 대수라고. 그런 일들은 어디서든 일어났을 것이고,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이나 되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가엾은 뽀삐. 누나 집 마당에서 영원히 사라졌고 누나의 기억 속에 비극적으로 남은 그때 그 시절 생명.

혹시 아직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테니 다시 한번 말하겠다. 오월엔 겸허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라져간 생명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 열다섯 살 반려견인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러니까 이 나라에 반려견이라는 말도 없고, 영양 균형을 맞춘 강아지 연령별 건강식도 없고,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도 없던 시절, 그 오래전 시절엔 사람들과 함께 살던 개들도 그렇지만 심지어 사람들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거짓말 같은 그런 일들이. 반려견인 나도 궁금하다. 그때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함께 살던 가족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랐을까? 이런 질문으로라도 다시 그들의 생을 품어보는 일. 그것이 오늘을 사는 일이다.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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