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백 칼럼] 경사노위, 새롭게 출발하는 자세로

국민일보

[김용백 칼럼] 경사노위, 새롭게 출발하는 자세로

입력 2019-05-22 04:01

경사노위의 차별화된 특성은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자들 참여로 합의 신뢰도 높인 것
이들의 활동과 참여 범위 제한으로 파행을 겪는 건 자가당착
미봉책과 한계성 극복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종전 노사정위원회 운영 방식 탈피해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만큼 소란스러운 곳은 없을 것이다.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의제 등 경제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논의와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합의와 최종 결과물을 만들지 못해 쩔쩔매는 곳도 견줄 데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출범 때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각종 현안을 논의하고 합의한다는 데 기대감이 컸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실망감과 함께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는 실정이다. 무용론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문재인정부의 경사노위는 기존 노사정위원회와 차별된다.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 대화에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확대해 합의의 진정성과 신뢰도를 높인다는 취지 때문이다. 청년·여성·비정규직을 각각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3인의 역할이나 활동은 가장 괄목할 상징이다. 그런데 이들 3인에 의해 빛나야 할 경사노위가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다. 의제별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합의해도 근로자위원 3인이 불참하는 한 본위원회에서 합의안을 최종 의결할 수 없는 불구상태다. 경사노위법에 위원회 의결 시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 각각 2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 경사노위 운영에 예상치 못한 중대한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경사노위 본위원회의 공전은 지난 3월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합의안에 대해 근로자위원 3인이 반발하며 불참하면서부터다. 이들 3인은 여전히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합의안의 본위원회 상정 철회와 논의 참여 확대를 요구하며 복귀하지 않고 있다. 미조직 상태의 노동자들의 피해가 뻔한데 본위원회에만 참석해 의결정족수를 채우고 상정된 안건의 의결에 찬반 표시를 해야 하는 거수기 역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경사노위가 애당초 이들의 들러리 역할을 상정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의견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역할을 충분히 고려했어야 마땅하다. 경사노위는 대화와 협의, 타협을 생명으로 한다. 내부 구성원들 간 이런 명제가 작동하지 않는 건 중대한 문제다. 취지는 긍정적이었으나 지나친 낙관과 의욕 과잉 때문에 간과한 부분이다.

경사노위는 본위원회가 아닌 의제·업종별위원회와 노사정 6인 회의체인 운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경사노위법 개정으로 의결정족수 요건 완화, 위원들의 책임 있는 참여와 의사표시 도모, 위원 해촉 규정 신설등으로 운영에서의 미흡함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법 개정안 발의와 국회에서의 최종 의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생길지,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법 개정이 될 때까지 운영 방삭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불참한 종전 노사정위원회의 논의 방식을 답습하는 수준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근로자위원 3인의 역할과 논의 참여 확대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도 볼 수 있다. 근로자위원 3인이 참여를 요구한 위원회 활동은 운영위 및 의제개발조정위이었기 때문이다. 운영위원회는 경사노위 내에서 모든 의제와 쟁점사안을 다룬다. 근로자위원 3인이 ‘가장 막강한 권한을 지닌 카르텔’로 표현하며 사회적 대화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시간에 쫓기는 경사노위가 새로운 요소를 발전시키기보다는 기존 구도의 편의성으로 회귀하려는 자세다. 본래 취지가 퇴색되는 상황에서 마침내 지난 14일 공익위원들이 나서서 입장문을 발표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경사노위는 드러난 근로자위원 3인의 역할 제고와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근로자위원 3인은 신속히 복귀해 의견을 적극 말할 것을 권유했다. 민주노총의 참여도 촉구했다. 운영위원회의 어떤 해법이 나올지가 관심사다.

경사노위의 주체는 노사정이다. 그 한 축이 노동계다. 이번 경사노위 사태는 노동계 의견 수렴에 있어 여전히 미흡하다는 걸 노출시켰다. 근로자위원 3인의 목소리는 새겨들을 만하다. 이들은 전체 노동자 중 조직화된 200여만명 위주로 노동 관련 문제를 논의하려는 자세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조직 상태의 노동자 1700여만명을 고려한 논의와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갈수록 노동계 문제를 대기업 노조의 역할에만 기대어 해결하기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노동계는 지금 매우 다양한 업종의 출현에 따른 다양한 노동형태로 분화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이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급증 추세가 단적인 예다. 기존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대화의 틀과 개념을 유지하는 정도로는 허점투성이의 미봉책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또 사회적 대화를 한다는 시늉만으로는 사안을 감당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경사노위가 노동 문제 등 현안에 접근하는 출발점과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논설위원 ybkim@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