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벼락같이 내린 축복

국민일보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벼락같이 내린 축복

목회는 영권(靈權)이다 <7>

입력 2019-05-23 00:07
  • 네이버 채널구독 이벤트 당첨자 발표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07년 2월 강원도 춘천 경강교회에서 열린 가족초청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40일 금식이 끝나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시작됐다. 꼬박 1년 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고 교회에만 머물며 기도훈련에 전념했다. 물질을 초월하는 믿음의 훈련도 3~4년간 철저히 받았다.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기도 제단을 쌓고 밤 8시부터 11시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365일 그렇게 기도의 불을 이어가며 빈손으로 주님만 바라봤더니 교회에 축복이 오기 시작했다. 성도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교회 부지 문제도 모두 해결됐다. 교회 재산도 많아졌다.

‘아,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는 정말 돈 걱정하면 안 되는구나. 빈손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더니 축복을 주시는구나.’ 돈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과거의 삶이 얼마나 큰 잘못이고 죄악인지 깨달았다.

2000년 12월 춘천가나안교회를 개척하고 5년쯤 지났을 때 자립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개척을 하든지 좋은 일을 하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회 모임에 갔더니 경강교회 담임목사가 와서 하소연했다. “교회를 빼앗길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저는 해결할 능력이 없어 교회를 사임하겠습니다.” 예배당을 뺏긴 고통을 알기에 내가 좀 알아보겠다고 했다.

경강교회는 40년 된 농촌교회로 노인들이 많았다. 순박한 어르신들을 보니 어린 시절 자랐던 거제 송진교회가 생각났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 부지의 명의가 경강교회가 아닌 40년 전 임시당회장 이름으로 돼 있다는 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분의 후손이 교회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담임목사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성도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 사임을 앞두고 퇴직금을 놓고 실랑이도 벌이고 있었다.

“김 목사님, 우리 교회 좀 제발 지켜주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성도들이 애원했다. 그들에게 교회는 삶의 전부였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 노인 성도들과 대립하는 담임목회자, 얄팍하게도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목회자 후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시골 성도들이 보였다.

“목사님, 더 이상 성도들과 대립하지 마십시오. 퇴직금은 교회개척자금 형식으로 저희 교회에서 지급하겠습니다.” 그렇게 그 목사는 2000만원을 받고 교회를 떠났다.

남은 문제는 토지 소유권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경강교회는 40년 전 미국 선교사가 당시 3만원을 줘서 땅을 매입한 교회였다. 엉뚱하게도 임시 당회장을 맡았던 인사가 토지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해놓아 문제가 생겼다. 그의 후손을 만났다. “제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사례를 하겠습니다. 그 땅을 교회 명의로 바꿔 주시지요.” “법대로 하려면 하시오.”

어쩔 수 없이 소송이 시작됐다. 40년 전 사건을 바로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증거를 찾아내고 증인을 세우는 게 만만치 않았다. 특히 증인으로 나선 초창기 개척 전도사가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고통을 겪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어떠한 고통을 당하든 어떤 욕을 먹든 상관없습니다. 이 교회만 빼앗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시골 분들이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만 해 주십시오.”

과거 수원에서 교회 건물과 땅을 빼앗기고 2년간 겪었던 수치스러운 경험이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 성도들은 내가 변호사비를 써가며 자신들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년간의 소송 끝에 2심에서 ‘경강교회가 존치하는 한 토지에 대한 재산권을 후손들이 행사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사실상 승리였다.

이 일을 하면서 새벽기도와 밤 기도회를 쉬지 않았다. 매일 기도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춘천가나안교회와 경강교회는 거리상 멀지않았다. 두 곳을 오가며 새벽기도를 인도했다. 주일이 되면 양 교회를 오가며 통합 예배도 드렸다.

정말 초대교회가 따로 없었다. 영적으로 회복되자 경강교회 성도들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목사님, 교회 생활이 참 행복합니다.” 여기저기서 행복하다는 고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일 밤 기도회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늘어났다. 경강교회의 모든 문제가 마무리된 2007년 송구영신예배 때였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