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누들링, 요거팅, 에깅… 밀크셰이킹

국민일보

[한마당-태원준] 누들링, 요거팅, 에깅… 밀크셰이킹

입력 2019-05-25 04:04

보편적 시위법은 피케팅(picketing)이다. 주장이 적힌 피켓을 대중 앞에 들어 보인다. 1인 시위는 대표적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이 방법이 안 통할 때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을 공격하거나 분신 같은 자해를 통해 말하기도 한다. 피켓과 폭력 사이에 절묘한 중간지대가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음식이다. 허기와 갈증을 달래주는 음식은 모욕을 주는 데에도 탁월한 효능을 가졌다. 누들링(noodling) 에깅(egging) 요거팅(yogurting) 크림파잉(cream pieing) 같은 말이 생겨났다.

러시아 관용어 “내 귀에 국수를 걸지 말라”는 속임수를 쓰지 말라는 뜻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영사관 출입문에 삶은 국수를 잔뜩 가져다 걸었다. 편파적인 러시아 방송을 향해 “거짓말하지 마!”라고 외치는 행동이었다. 옛 소련권 국가에선 이런 누들링이 정치적 의사 표현의 방법으로 활용된다. 그리스 요거트는 ‘야오우르타마’란 시위문화를 낳았다. 1950년대 기성질서에 저항하던 청년들이 정치인의 얼굴에 요거트를 뿌리며 시위하자 정부는 이를 금지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요거팅은 2013년 재정 위기로 시위가 확산될 때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에서 크림파잉을 퍼뜨린 사건은 1977년 벌어졌다. 반(反)동성애 기자회견을 하던 팝스타에게 크림파이가 날아들었다. 끈적한 것이 주룩 흘러내리며 볼품없게 만드는 효과에서 요거트와 흡사했다. 이런 장면을 가장 쉽게 연출해주는 건 달걀이었다. 휴대가 편하고 수류탄처럼 껍질이 터지는 기능도 있어 에깅은 문화권을 불문하고 널리 애용됐다. 하지만 달걀을 들고 다니는 건 좀 어색한 일이다. 테러 탓에 검문검색이 심한 곳에선 특히 그렇다. 이에 영국인은 밀크셰이킹(milkshaking)을 개발해냈다. 극우 정치인의 유세 현장에 유유히 접근해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밀크셰이크를 사다가 던진다. 끈적이고 흘러내리는 효과가 달걀 못지않다.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 등 여럿이 당했다.

한국은 에깅 외에 밀가루를 뿌리는 플라워링(flouring)과 물병을 던지는 워터링(watering) 정도가 있었다. 정치는 변함없이 욕을 부르는데 식습관은 날로 바뀌니 장차 어떤 음식이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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