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모세와 장인

국민일보

[바이블시론-장윤재] 모세와 장인

입력 2019-05-2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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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8장엔 모세와 그의 장인 이드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랜만에 만난 장인에게 모세는 하나님이 어떻게 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셨는지 말했고, 이드로는 크게 기뻐했다. 다음 날 장인은 모세와 히브리인들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조언을 한다.

모세가 백성들의 송사를 다루려고 자리에 앉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었다. 이 일을 지켜보고 있던 장인이 모세에게 말한다. “자네는 어찌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을 모두 자네 곁에 세워 두고, 자네 혼자만 앉아서 일을 처리하는가?” 모세는 반쯤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답한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생기면, 저에게로 옵니다. 그러면 저는 이웃 간의 문제를 재판해 주고, 하나님의 규례와 율법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장인 이드로의 눈엔 ‘권력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사위의 속마음이 읽혔다. “자네는 백성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백성의 일을 아뢰게.” 모세가 백성의 문제를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그 문제를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의 문제의 ‘대변자’가 돼야지 ‘결정자’기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걸 두고 고언(苦言)이라고 한다. ‘듣기 싫으나 도움이 되는 말’이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홍해를 갈라 당대 세계 최강 파라오의 군대를 따돌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연 모세는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민족 해방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장인은 진실을 말해준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문제를 가지고 나아오는 이유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답을 듣기 원하기 때문이라는 진실 말이다. 모세가 가진 권력의 본질을 깨우쳐준 것이다. 모세가 누리는 힘은 하나님께서 잠시 위임해준 것이지 결코 그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장인은 이어 모세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짓이 없으며, 부정직한 소득을 미워하는 능력을 지닌 지도자들을 뽑아 권력을 나누라 권한다. 성서가 말하는 참된 지도자의 첫 번째 능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산다는 말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뒷담화를 두려워하며 산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맑은 거울 앞에 항상 자신을 비추어보며 산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은밀한 죄를 짓지 않는다. 위선자도 수치심 때문에 노골적인 죄는 짓지 않지만 얼마든지 은밀한 죄를 짓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는 사람이 없어도 정직하고 떳떳하다. 역대하 19:7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성서가 말하는 참된 지도자의 두 번째 능력은 거짓이 없는 것이다. 겉과 속이 일치하고 숨기는 것이 없어 믿을 수 있고 든든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성서가 말하는 참된 지도자의 세 번째 능력은 당연히 부정직한 소득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욕심이 없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그것과 타협해 스스로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들이 사실상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참된 지도자의 상은 아닌가. 교회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보기를 바라는 진짜 지도자의 모습 말이다.

이드로 같은 장인을 둔 모세는 행복하다. 모세는 홀로 모세가 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세는 역시 남달랐다. 그는 장인의 말을 알아들었고 그의 조언대로 다 실행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짓이 없으며, 부정직한 소득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지도자들로 세우고 권력을 나눴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에서 갓 탈출해 오합지졸같이 방황하던 히브리 노예들은 비로소 하나의 민족으로 정비될 수 있었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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