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관이 기밀 유출… 땅에 떨어진 공직기강

국민일보

[사설] 외교관이 기밀 유출… 땅에 떨어진 공직기강

입력 2019-05-24 04:01
정권과 공무원 사이의 갈등 기류에서 비롯된 현상일 수도…
공직사회 분위기 점검해 복지부동 등 문제 해소해야


주미 대사관 고위급 외교관이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했다. 정상 간 통화 내용은 3급 국가기밀로 분류되며 이를 유출하는 것은 외교상 기밀누설죄에 해당하는 범법행위다. 정상들이 나눈 대화는 안보와 직결되기에 양측이 협의를 거쳐 공개 수위를 결정한다. 비정상적 경로로 노출되는 건 국가 간의 약속이 깨지는 일이어서 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출 행태가 일회성이 아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철저한 조사와 법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외교 기밀의 민감함을 모를 리 없는 외교관이 이런 일을 벌였다. 공직 기강이 심각하게 무너졌음을 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 기강 확립을 지시한 뒤에도 기강 해이에서 비롯된 외교 결례 등 각종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역대 정권의 3년차 징크스는 상당 부분이 공직 기강 문제에서 비롯됐다. 엄한 징계와 처벌로 일탈을 바로잡는 동시에 공직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담에서 “관료들이 말을 덜 듣는다” “집권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는 말이 오갔다. 한팀이어야 할 정권과 공무원 사이에 이처럼 갈등 기류가 형성돼 있어서는 국정이 결코 원활할 수 없다. 정부 출범 2년 만에 벌써 공무원의 만연한 복지부동이 문제로 지적되고 야당을 향한 정보 유출 현상이 나타났다. 적폐청산 등 국정 기조에서 파생된 부작용은 아닌지 돌아보고 해소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강 의원이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통화 내용은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한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기밀누설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당은 “구걸외교를 들키니 공무원에게 책임을 지운다”고 비난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강 의원은 당시 회견에서 트럼프의 방한을 상반기에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제 와서 구걸이라 비하하는 것은 모순이다. 또 기밀을 누설해 법을 어겼다면 누구라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범법 혐의가 있는 공무원에 대한 직무감찰은 공무원 탄압이나 인권 침해가 될 수 없다. 정부의 중요한 기밀 정보가 적법한 절차 없이 외부로 유출됐으니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건 아닌지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더욱 정밀한 감찰을 벌여야 하는 일이다.

강 의원 회견 직후 청와대 대변인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는데, 이제 기밀이 유출됐다고 하니 ‘거짓 브리핑’ 논란이 불거졌다. 이 대응은 미숙했다. 반박 수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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