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김정은은 라이어”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김정은은 라이어”

입력 2019-05-2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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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 끝난 지 3개월 흐른 현재 남북미 관계는 엉망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게 주원인
김정은 甘言에 더 속지 않도록 비핵화 전열 재정비할 때다


북·미 정상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났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지 딱 3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남북미 관계는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3국 사이에 훈풍이 불던 1년 전과는 딴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개인적 관계가 파탄나지 않고, 북·미 어느 쪽도 협상 중단을 공식 선언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아슬아슬하다.

먼저, 미국과 북한의 신경전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 석탄 불법 운송혐의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압류한 데 이어 자금 송금과 돈세탁 등 금융제재에도 고삐를 죄고 있다. 트럼프가 “올해 말까지 북한과의 협상을 기다려볼 용의가 있다”고 밝힌 만큼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제재는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자 북한은 ‘미국이 선박을 강탈하는 등 위험천만한 장난질을 일삼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2005년 6자회담 결렬을 가져왔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언급하며 북·미 정상회담이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앞서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교체를 요구했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선 “멍청해 보인다”고 비난했다. 양측이 조만간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기는 힘든 상태다.

남북 관계는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어렵게 4차 남북 정상회담의 길을 열었지만, 김정은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문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압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 신청을 승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 방침을 밝힌 데 대해선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지원과 비정치적 교류 좀 한다고 일이 제대로 풀릴 수 있겠는가”라고 큰소리쳤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대북 제재 완화와 통큰 경제 지원 등 김정은정권 돕기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이다.

한·미동맹은 삐걱대고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견고하다고 주장하나 실상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단적인 사례가 미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한 ‘한·미 관계의 배경’이란 보고서다. 보고서 골자는 이렇다. ‘최근 수년간 한·미 양국은 북한 문제에 긴밀한 조율을 보여줬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 문제에 점점 더 불일치하고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문재인정부가 대북 제재 완화에 치중하는 듯한 자세가 주요인이라고 하겠다.

지난해부터 남북, 북·미 정상이 잇따라 만난 목적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다. 결과는 어떤가. 김정은이 회담에서 비핵화를 언급하긴 했지만, 어떻게 비핵화를 실행할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핵포기를 결단했다면 보유 중인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공개하고 검증을 받는 절차에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 역시 비핵화 의사를 표현한 게 아니라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사회의 핵동결과 비확산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뜻이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거부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의심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확산되는 추세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핵시설 1∼2곳을 없애길 원했지만 나는 5곳을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어쩔 것이냐. 당신은 합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비화를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은 거짓말쟁이(liar)”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 대통령도, 대북 특사로 김정은과 만났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마찬가지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일부 국제사회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김 위원장의 ‘솔직한 심경(?)’까지 자세히 대변했다. 이런 것들이 쌓여 일각에 ‘김정은이 머지않아 핵을 폐기할 것’이라는 환상이 만들어졌다.

북핵 문제가 나올 때 종종 인용되는 외국 속담이 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다.’ 여기에 ‘세 번 속으면 공범’이라는 얘기도 있다. 문재인정부는 어느 쪽인가.

내달 하순, 서울에서 한·미 정상이 다시 만난다. 이번 회담은 비핵화 개념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공유한 뒤 양국이 함께 밀어붙이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리고 4차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을 진정한 비핵화의 길로 이끄는 전환점이어야 한다. 김정은의 감언(甘言)에 휘둘리는 우를 반복하지 않도록 차분하고 치밀하게 비핵화의 전열을 재정비할 때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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