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네와 내 발음, 구분 잘 되시나요?

국민일보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네와 내 발음, 구분 잘 되시나요?

입력 2019-05-28 04:01

사투리 사용자 말할 것도 없고 표준어 사용자도 대부분 안돼
성경 돌려 읽을 때 혼동 경험, ‘니’ 복수 표준어로 인정 필요


작고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게서 들은 얘기다. 1992년 4월 8일 오후 3시. 노태우 대통령이 급히 불러 청와대 집무실을 찾았다. 민주자유당 차기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유력 주자 김영삼 대표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노 대통령은 방금 도착한 모 석간신문 칼럼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노태우: 이형, 이 칼럼 한번 보세요. 대통령에게는 국가관리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런데 김 대표는 이 논설위원이 쓴 것처럼 경제를 전혀 몰라요. 경제를 ‘겡제’로 발음하는 걸 더 이상 애교로 봐줄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만섭: 아이고 각하, 저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정치인이 발음은 제대로 해야지요. 그런데 겡제라는 게 아마 거제도 사투리인 모양이지요. 김 대표가 발음은 그렇게 해도 경제에 대한 리더십은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내가 취재 현장에서 지켜본 바, 김영삼 전 대통령은 태생적으로 이중모음을 발음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경제의 ‘ㅕ’ 발음 잘못은 경남 남해안 주민들의 공통된 어려움이니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는 ‘ㅘ’ ‘ㅟ’ 같은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관광을 간강, 위대한을 이대한이라 하니 발음에 관한한 거의 장애 수준이라 해야겠다.

수도권에 살다보면 경상도 출신자의 언어가 유별나게 거칠다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 타 지방 출신자에 비해 사투리나 방언을 많이 쓰는 편이다. 1990년대 집권당 모 고위 당직자는 기자들과 간담회할 때 사투리가 너무 심해 경상도 이외 출신 기자들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떤 기자가 그의 말을 절반밖에 못 알아듣겠다고 하소연했던 기억이 난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를 지켜보면 경상도 출신 의원 상당수가 ‘ㅋ’을 부적절하게, 그것도 자주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케서’(해서)와 ‘카면’(하면, 말하면)이 대표적이다.

사투리 사용에 그치지 않고 모음을 정상적으로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게 ‘ㅡ’와 ‘ㅓ’의 혼동이다. 나도 경상도에서 태어나서인지 이 발음은 구분해서 하기가 무척 힘들다. 어음, 버스, 어스름, 스스럼없이 같은 낱말을 발음할 때 ‘ㅡ’와 ‘ㅓ’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 아니 구분해서 발음하기가 어렵다. 남 하는 말 들을 때도 구분이 거의 안 된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서 태어나 자란 딸아이들에게 놀림당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간혹 아이들 앞에서 연습해보지만 ‘교정 불가’ 판정 받기 일쑤다. 정확히 구분해서 말하고 듣는 사람들이 내심 손가락질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이런 얘기 나누다 가끔 접하는 화제가 하나 있다. 표준어 사용자를 포함해 언중(言衆)의 절대 다수가 ‘네’와 ‘내’를 구분해서 발음하지 못한다는 사실. 어법상 ‘너’에 주격이나 보격 조사 ‘가’가 붙을 때 ‘네’의 형태가 돼 ‘네가’로 발음해야 하는데 이 발음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발음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아예 ‘니가’로 바꿔 말하는데도 국립국어원이 이를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줄곧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남녀 10명에게 물어봤더니 9명이 ‘네’와 ‘내’를 구분해서 발음할 줄 모른다고 답했다. 듣기도 구분이 안 된다고 했다. 평소 말할 때 ‘네가’를 쓴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대신 ‘니가’를 주로 쓰며 간혹 ‘너가’를 쓴다고 답했다. 기독신자라면 성경 읽을 때 ‘네’ 발음 때문에 불편을 느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시편 50:12-21을 보자.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암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내어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개역개정판)

여기서 ‘네’가 15회, ‘내’가 9회 사용됐다. 혼자 눈으로 읽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거나 남이 읽는 걸 들을 때는 헛갈려서 알아듣기가 참 힘들다. 읽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힘들다보니 아예 ‘니’로 바꿔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기와 소리 내어 읽기는 물론, 듣기까지 ‘네’는 사어(死語)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라면 ‘니’를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국립국어원이 최근 들어 복수 표준어를 확대하고 있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자장면/짜장면, 예쁘다/이쁘다, 만날/맨날, 차지다/찰지다, 쇠고기/소고기…. 언어의 변종을 막아 국민 의사소통을 편하게 하는 것이 표준어 운용의 목적이라면 언중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한 복수 표준어로 폭넓게 인정해 주는 게 좋겠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태복음 19:19). 여기서 ‘네’를 ‘니’로 바꾸어 보자. 복음이 귀에 더 잘 들어오지 않는가.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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