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림의 명화로 여는 성경 묵상] “이제는 주를 눈으로 뵈옵나이다”

국민일보

[전창림의 명화로 여는 성경 묵상] “이제는 주를 눈으로 뵈옵나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아내에게 조롱받는 욥’

입력 2019-05-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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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경 작품, 에피날 고대현대미술관

사탄이 하나님을 찾아가 이상한 제안을 한다. “당신의 종이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시지만, 당신이 그에게 많은 것을 주니까 사랑하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오. 내 말이 맞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욥을 믿고 자신 있게 그러라고 허락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올바르게 살던 욥에게 갑자기 시련이 닥쳤다. 소와 나귀, 낙타 모두를 약탈당하고 양이 모두 벼락 맞아 죽었다. 데리고 있던 하인들뿐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 열 명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온몸에 종기가 나서 가려워 죽을 지경이 된 욥은 기왓조각으로 몸을 긁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7일 밤낮으로 욥의 곁에서 욥이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하나님이 이유 없이 시련을 주실 리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욥은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이 모든 일이 닥쳤다고 생각한다. 원인 없이 고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인간에겐 고통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가라는 물음은 믿는 자든 안믿는 자든 누구나 가진 영원한 물음이다. 욥기는 이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다룬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라투르는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 친구와 엘리후와의 지루한 변론보다 아내와의 짧은 대화의 순간을 신비스러운 정적 구도로 그림으로써 욥과 고난, 욥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우리에게 깊은 묵상을 하게 만든다.

이 그림에서 유일한 빛은 가물거리는 촛불 하나다. 욥의 꺼져가는 초라한 처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의인인 욥은 왜소하고 처참하다. 그의 발치에는 상처를 긁던 깨진 질그릇 조각이 있다. 그러나 화면을 압도적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거대하고 견고한 아내의 모습이다. 아내는 화사하고 풍성한 붉은 옷을 입고 세상을 대표하며 “이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욥을 조롱한다. 왜 의인이 고통 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초기에 욥은 이미 그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욥이 의인이긴 하지만 사람의 의로 하나님의 의를 정죄할 수는 없다. 욥이 다시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으로 전에 비해 배나 큰 축복을 받았다지만 사실 진짜 큰 축복은 이러한 벼랑까지 가는 과정을 통하여 세 친구나 엘리후의 세상에 바탕을 둔 인과응보적 인식을 넘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세상의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관념은 믿음의 표본인 욥에 비해 거대하고 단단하다. 그에 비해 쭈그리고 앉은 욥은 얼마나 왜소한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원한 행복을 갖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과 전혀 다른 길이며, 우리 인간이 그 완전한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 목숨을 바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욥 1:8, 9, 11, 12)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7~10)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힌다. 위선과 질투, 허세가 가득한 세상을 풍자하는 풍속화를 그렸고,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명상과 묵상을 상징하는 종교화에도 능해 당대에 유명세를 떨쳤다.

라 투르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부분조명 기법을 작품에 적용했다. 라 투르는 화면 안에 광원을 두었다. 그의 작품은 촛불을 이용해 그림 속 대상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사실감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촛불의 화가’라고 부른다. 대표작으로 ‘등불 앞의 막달라 마리아’가 유명하다.


<전창림 홍익대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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