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간절했던 신학대 입학… 스님 도움으로 길 열어주셔

국민일보

가난했지만 간절했던 신학대 입학… 스님 도움으로 길 열어주셔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의 전도, 너무 쉽습니다 <4>

입력 2019-05-3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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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오른쪽)가 지난해 4월 교회에서 열린 세례예배에서 새신자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세계로교회 제공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김해 무척산기도원 밑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돌아가셨고 극심한 가난이 찾아왔다. 우리 다섯 식구는 봄에는 산나물을 뜯고 여름엔 남의 집 일을 도왔다. 겨울엔 무척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야 겨우 먹고 살수 있었다.

불신가정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교회에 다녔다. 형은 예수 믿는 나를 죽이겠다며 낫을 들고 덤벼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신학대학에 시험을 쳐 합격했는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우리집에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다.

용기를 내서 집안에서 가장 부자인 삼촌을 찾아갔다. 논 100마지기를 지닌 거부였다. “니도 알다시피 우리 아이들은 동아대와 부산대를 다녔다. 한 아이 보낼 때마다 논 30마지기가 들어가더라. 너그 집은 논 두 마지기도 없는데 우짤라고 그러노. 니는 어림도 없데이.”

“삼촌, 제가 대학에 가는지 못가는지 두고 보십시오. 과정은 잘 모르지만 저는 반드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지만 등록마감 하루 전까지 주머니에는 단돈 1만원도 준비되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해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쐐야 했다. 부산 주례삼거리 철길 뒤로 올라가면 불현사라는 절이 있었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놀러 갔다가 그 근처에서 우물물을 마셨던 적이 있다. 그때 한 스님이 나를 보고 자기 동자승이 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친구가 이렇게 설명했다.

“스님, 얘는 앞으로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된다는데요.” “그래? 그럼 나중에 놀러나 오거라.” 그때 생각이 나서 부산으로 향했다. 절에 갔는데 마침 그때 만났던 스님이 있었다.

“어찌 왔는가.” “놀러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목사 된다고 하더만.” “시험은 쳤습니다.” “합격했나.” “했습니다.” “등록했나.” “아직 못했습니다.” “요새 등록금은 얼마나 하나.” “입학금하고 등록금까지 해서 60만원 정도 됩니다.” “그렀나. 마 놀다 가거라.”

놀다가 내려가는데 절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불러 스님을 만나고 가라고 했다. “스님, 잘 놀다 갑니다.” “안으로 들어오니라.” 스님이 돈봉투를 내밀었다. “이 돈으로 등록하거라.” “아니, 제가 이 돈을 받아도 됩니까.” “열심히 예수 믿어서 나중에 부처가 되면 되지.”

캄캄한 밤이 되도록 내가 들어오지 않으니 어머니가 걱정이 됐는지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오노.” “등록했다. 스님이 60만원을 줘서 신학대에 등록하고 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절을 향해 연신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쳤다. “엄마, 그건 부처님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막상 고신대 신학과에 입학하고 나니 통학이 문제였다. 기숙사비는커녕 밥 사먹을 돈조차 없었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다시 절로 갔다.

“스님, 덕분에 등록은 잘했습니다.” “집이 김해에서 더 들어간다고 했는데 어디서 생활할라꼬.” “아직 거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갈 데가 없으면 다락을 내어줄 테니 거기서 먹고 생활하면 어떻겠노.” “오늘부터 말입니까.” “그럼.” 그렇게 그날로 절 생활이 시작했다.

등록금이 60만원인 시절 49재를 지낸다고 사 온 과일 값이 30만원어치였다. 그때만 해도 파인애플 같은 수입과일은 구경도 하기 어려웠는데, 제일 비싸고 좋은 과일로 제사를 지냈다. 제사 후 일하는 분이 종류별로 과일을 갖고 다락으로 왔다. “저는 제사 지낸 것은 먹지 않습니다.”

이튿날 스님과 겸상을 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뭐하노.” “기도합니다.” “밥을 누가 주는데.” “하나님께서 주셔서 먹는 것 아닙니까.” “야, 내가 일해서 니한테 밥 주는데 무슨 소리고.” “스님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 아닙니까.” 사실은 스님도 일제강점기 때 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잘해주셨다.

그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다락방에 과일이 올라왔다. “이 과일은 먹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께서 손군은 제사 드린 음식은 먹지 않으니까 제사 전에 미리 담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스님께 용돈도 받고 책값도 받고 등록금까지 받으면서 신학교에 다녔다.

절에서 지냈지만 새벽마다 근처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새벽 4시가 되면 스님은 절을 한바퀴 돌면서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했다. 예불이 끝날 때쯤 나는 성경책을 들고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면서 교회로 향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절에서 지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은 우리 삶을 기적적으로 인도하시는구나.’

어머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 삶을 직접 보셨기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급기야 고향교회를 짓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완고하던 마음이 우르르 무너졌다.

어머니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형님이다. 예수 믿는다며 나를 죽이려 하고 교회에 온갖 욕을 다 퍼붓던 형님이 나보다 먼저 목사 안수를 받았다. 누나도 얼마 되지 않아 예수를 믿게 됐다.

▒ 전도를 위한 대화 이렇게
믿음이란 영접하는 것


전도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구원의 기준을 분명하게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했습니까.

대상자1: ‘믿는 자’라고 돼 있습니다.

전도자: 맞습니다. 성경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 앞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라오는데 그 조건은 오직 하나 ‘믿는 자’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게 도대체 뭘까요. 말씀을 보니까 ‘영접하는 자=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돼 있군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쉽게 말해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선생님, 만약 오늘 저희 부부가 이 선생님을 찾아가면 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대상자1: 목사님이시니까 당연히 문을 열어 드려야죠.

전도자: 원래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 주십니까.

대상자1: 아닙니다.

전도자: 이 선생님이 저희를 정확히 잘 아시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로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이기에 문을 열어 주신다는 그 말씀이죠.

대상자1: 네, 그렇습니다.

전도자: 이 선생님, 그것이 바로 저희를 영접하신 것입니다. 영접은 저희를 거절하지 않고 어서 들어오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요인과 군악대가 팡파르를 울리며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TV 화면 자막에 ‘공항영접’이라는 자막이 보였습니다.

영접에는 ‘당신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라는 뜻이 있죠. 만약 테러범이나 마약사범이 한국에 들어온다면 정부 당국은 어떻게 할까요.

대상자1: 당연히 추방하지요.

전도자: 그렇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들은 추방합니다. 영접의 반대말은 추방이고 거부입니다. 추방이란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돌아가셨음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며 환영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나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싶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이것이 영접입니다.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계 3:20) 이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구원받는 것이 이렇게 쉽단 말인가.’ 이런 질문을 예상하시고 하나님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에 비유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너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박 선생님, 최근 딸이 병원에서 출산했다면서요.

대상자2: 네, 맞습니다.

전도자: 갓 출산한 아기가 “아이고, 아버님 어머님 뱃속에서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던가요.

대상자2: 네? 아기가 어떻게 부모를 알아보고 말을 합니까.

전도자: 아니, 그럼 부모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알아보지도 못한 아기를 키운다는 말입니까.

대상자2: 아기인데요.

전도자: 부모도 못 알아보고 인사도 하지 않는 아기를 왜 키우는 거죠?

대상자2: 말은 못 해도 내 자식이니까 그렇죠.

전도자: 그렇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과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너무나 비슷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는 태어나서 말도 못 하고 똥오줌 싸며 울기만 하지만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고 찬양할 줄도, 기도할 줄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손현보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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