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주도홍] 자연 순례

국민일보

[바이블시론-주도홍] 자연 순례

입력 2019-05-31 04:04

은퇴로 시간 여유를 찾은 나는 요사이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 행복한 자연인이 되고 있다. 이전 바쁘게 살면서 우리 곁에 와 있는 자연과 친하지 못했다. 우리 곁 자연을 힐끔거릴 뿐 그들에게 깍듯하지 않았다. ‘아름답다’ ‘이쁘다’라는 말을 그들에게 건네기도 했지만, 제대로 시간을 들여 교제한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것을 지은 후 탄성을 지르셨다. “내가 보니 너무나 아름답구나!” 과연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지를 한 번쯤 찾아 나서는 것은 어떨까.

얼마나 다양한 꽃들이 시간 간격을 두고 피고 지는지, 그 틈새를 메꾸는 창조주의 지혜와 세심함이 신기하고 놀랍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향한 배려에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 지나고 온화한 봄이 왔다고 일시에 꽃들이 피고 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질서 있게, 자기 차례를 또박또박 지켜 피고 진다. 그 엄격성, 정확성이 기가 차다. 동시에 피는 꽃들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벌들을 유혹하는 녹색의 회양목 꽃이 숨은 듯 겸손하게 피어오르면 비로소 봄이다. 노란 산수유, 연분홍 진달래, 노란 생강나무, 빨간 또는 진홍색 하얀 매화, 노란 개나리가 차례로 꽃을 피우고, 하얀 목련화가 자기 때를 따라 피고 허무하게 진 후, 자색 목련화가 무겁게 피어오른다. 그새 꽃들을 방문하는 춤추는 나비와 왱왱거리며 꿀 보따리 들고 출장 다니는 벌들, 각양각색의 곤충들이 꿈틀거리며 자연의 가족이 된다. 향기 그윽한 연보랏빛 라일락 꽃이 화려하게 자태를 뽐낼 때 함께 일하는 하얀 듯 분홍의 사과 꽃, 하얀 배꽃, 자두 꽃, 열정적인 진홍의 복사꽃, 연분홍 모과 꽃, 블루베리의 하얀 꽃이 피고, 봄의 끝자락에 이르면 장미꽃 두 배 크기의 보랏빛 모란꽃이 피어 일순간 뚝뚝 떨어져 시인 김영랑이 봄을 잃은 슬픔에 하냥 울 때, 시인을 위로하러 바람에 한들거리며 연한 가지에서 피어나는 꽃이 작약이다. 5월의 여왕 장미가 자태를 뽐내며 겨울이 올 때까지 피니 가장 오래 피는 강한 꽃이 장미라 하겠다. 가시장미가 고고한 향기를 발할 때, 온 동네를 향기로 꽉 채우는 소박한 꽃이 백색의 아카시아 꽃이다. 이때 다른 하얀 꽃이 동네 어귀 여기저기 피어오르는데, 꽃말이 슬픈 찔레꽃이다. 그렇게 봄꽃들이 분주히 피고 질 때 막차에 오르는 하얀 꽃들이 있는데 감꽃, 밤꽃, 대추꽃이다. 그러면 영락없이 여름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이때를 놓칠세라 낮에는 뻐꾸기 뻐꾹 뻐꾹 울고, 밤에는 소쩍 소쩍 소쩍새가 애타게 울어 우리의 가슴이 아리다.

자연은 모든 이를 위한 축복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선물,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다. 문제는 인간이 그 선물을 제대로 누리는가이다. 얼마나 진지하게 자연을 우리네 이웃으로 맞아들이는지이다. 어떻게 자연을 우리가 건강하게 보존하는지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자리로 자연을 제공하셨지만, 인간은 그 자연을 밀치고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빠르고 편리한 삶을 제공한다. 도시는 능률과 이윤을 극대화하며 어느새 경쟁을 유도한다. 도시는 배기가스와 미세먼지, 다양한 공해와 소음을 만들어낸다. 도시는 범죄와 헤아릴 수 없는 쓰레기를 배출한다.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잠들지 못한 채 도시들은 지쳐가고 있다. 남북극의 빙산은 온난화로 인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더워지는 바닷물은 태풍의 강도를 높이며, 지구촌은 사막화되고 있다. 빙하가 급격히 녹아내리고 있다. 북극곰들이 삶의 자리를 잃고 먹이를 찾아 남하하고, 우리 후손들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있다. 분명 지구촌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아하셨던 바로 그 현장이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지구촌을 주시할 때 인간의 회개와 각성이 요구된다. 독일 공영 TV의 환경보호 옛 구호 ‘자연은 사람 없이 살 수 있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를 기억하며, 어제 나는 동네 시장에서 쇠로 된 쓰레기집게를 위해 3000원을 꺼냈다.

주도홍 백석대 전 부총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