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의 당신과 함께한 한 컷]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이다

국민일보

[성현의 당신과 함께한 한 컷]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이다

영화 ‘돈’ (박누리 감독, 2018)

입력 2019-06-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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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상징하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첫 만남을 갖는 조일현(류준열 분·왼쪽)과 번호표로 불리는 남자(유지태 분).쇼박스 제공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욕망이 인간을 지배할 때 벌어지는 비극이 잘 드러나 있다. 바흠은 본래 소박한 삶에 자족하며 살던 농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주의 관리인으로 고용된 자가 소작농들을 괴롭히자 자기 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빚을 내서 자기 명의의 땅을 갖게 되고, 땅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망치는 것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하며 그들과 싸운다.

땅이 넓을수록 이런 분쟁이 없으리라 생각해 계속 더 많은 땅을 갖기 위해 애쓴다. 마침내 아주 적은 비용만 내면 하루 동안 걸은 곳이 자기 땅이 된다는 마을에까지 이르게 된다. 최대한 많은 땅을 얻기 위해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고 말았다. 해지기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무효가 되기에 사력을 다해 되돌아가려 뛰었다. 결국 그는 도착할 즈음 땅에 고꾸라져 숨을 거두고 만다. 그가 차지했던 땅은 무덤만큼의 땅이 되고 말았다. 살기 위해 땅이 필요했던 사람이 땅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영화 ‘돈’의 조일현(류준열 분)은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고 시작부터 말한다. 여의도의 한 증권사에 입사한 조일현은 이러한 포부와 달리 실적을 내지 못하고 매수와 매도를 헷갈려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친다. 절체절명의 순간 선배(김민재 분)의 권유로 ‘번호표’(유지태 분)라 불리는 주가조작 세력의 매수를 도와주는 중개인이 된다.

조일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적을 올리며 일반 회사원들이 꿈꿀 수 없는 거액을 벌기 시작한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땀 흘리던 피조물의 세계에서 정보와 순발력으로 막대한 부를 주무르는 조물주의 세계에 편입됐다고 착각한다. 배우려던 눈빛은 다 안다는 듯한 허세로, 동료를 도우려던 몸짓은 경계와 감춤으로, 일말의 망설임 속에 떨리던 음성은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져 거칠어진다. 돈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사람이 돈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소박하게 살던 농부 바흠은 왜 땅을 섬기는 사람이 됐을까. 화려한 도시 생활과 달리 시골에서는 땅만 여유가 있다면 겁날 게 없다며 악마도 무섭지 않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악마가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땅을 듬뿍 주어 땅으로 그를 사로잡겠다고 결심했다.

부자가 되고 싶을 뿐이라던 조일현이 주가조작이라는 범죄와 손을 잡은 것 역시 돈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마 6:24) 재물도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영화 내내 숫자로만 나오던 돈을 마지막 순간에 조일현이 가방에서 꺼내 뿌려댈 때 관객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게 된다. 조일현이 아니라 돈이었다.

예수님은 주인에게 자신의 부정함이 탄로 날 위험에 처하자 재빨리 주인에게 빚진 자를 찾아다니며 빚을 탕감해 준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하셨다.(눅 16:9) 그의 불의함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돈의 쓸모를 정확히 알았던 통찰력과 실행력을 칭찬하신 것이다.

배가 가라앉을 땐 배를 버려야 한다. 배는 목적지를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돈은 결코 목적지가 돼선 안 된다. 수단이 돼야 한다.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욕망의 속삭임을 거부해야 한다. 돈으로 무얼 해야 할지 아는 것이 지혜다.

영화가 하늘과 가까운 고층빌딩 옥상에서 시작하지만 땅 밑 지하에서 끝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욕망을 좇아 하늘로 올라가지 말고 두 발을 땅 위에 단단히 두고 살아가는 자만이 땅 밑으로 꺼지지 않는다.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이다.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고 있는가.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필름포럼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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