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주전자 속 개구리, 한국당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주전자 속 개구리, 한국당

입력 2019-06-05 04:01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한국당이 국회 포기하고 장외투쟁 벌일 만큼 악법인가
첫 단추를 잘못 뀄으면 풀어 다시 꿰는 게 옳아
패스트트랙 철회 요구는 소수의 횡포


국회가 멈춘 지 한 달이 넘었다. 자유한국당이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 국회를 보이콧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더불어민주, 바른미래, 민주평화, 정의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한 법안은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다. 선거법은 바른미래 민주평화 정의당의 필요에 의해,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민주당의 필요에 의해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성격이 전혀 다른 선거법과 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키지로 묶어 패스트트랙에 올린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부자연스럽다. 내년 4·15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고 싶은 군소 3당의 간절함과 현 정부 임기 내에 검찰 개혁의 시동을 걸려는 여당의 바람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일합을 겨뤄야 하는 한국당 입장에선 득될 게 없는 법안들이다.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의석수 감소가 불가피하고,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여권의 검찰 개혁 전리품으로 치장되고 홍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당의 반발은 이해된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법안이 국회 보이콧을 넘어 장외투쟁까지 벌일 정도의 악법이냐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악법이라면 한국당이 장외투쟁을 벌이기 전에 촛불이 먼저 광장을 가득 채웠을 게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디오피니언이 3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해 ‘잘했다’는 응답이 46.2%로 ‘잘못했다’(34.4%)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국회 파행 책임도 민주당(25.5%)보다 한국당(46.1%)에 있다는 응답이 훨씬 많았다. 여론조사 결과를 곧 여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를 대신할 보다 과학적인 데이터도 없다.

한국당은 명분싸움에서 졌다. 이게 여론이 한국당에 냉담한 가장 큰 이유다. 선거법 협상이 대표적이다. 쇼든 아니든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당은 오로지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홍카레오’ 토론에서 “87년 체제 이후 선거법을 여야 합의 없이 처리한 전례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결과 두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대화와 타협이 있어야 할 정치에 혐오와 막말이 그것을 대체했다. 홍 전 대표의 논리는 두 거대 정당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사이 좋게 나눠 먹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거법 개정 논의는 이런 정치의 부정의를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국민의 지지만큼 국회 권력을 배분하자는 거다. 이보다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원칙은 없다. 한국당은 이를 거부했다. 정치는 명분인데 작은 이익에 집착해 한국당은 대의를 잃었다. 강효상 의원의 국가 기밀 유출 논란에 이은 의원들의 잇따른 막말 퍼레이드는 덤이다. 한국당의 막말은 더 이상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상사가 됐다.

한때 한 자릿수까지 좁혀졌던 한국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는 최근 다시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여론이 한국당에 준 옐로카드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오불관언이다. 옐로카드를 받고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 그다음은 레드카드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가속 페달을 밟으면 사고는 필연이다. 지금 한국당이 밟아야 할 건 가속 페달이 아니라 브레이크다.

한국당의 과속은 결국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철회만이 국회 정상화의 유일한 해법임을 강조한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여당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그것도 국회선진화법이 정한 절차에 맞게 가중다수결로 결정한 사안을 없던 일로 물리라는 것은 소수의 횡포이자 민주주의에 반한다. 잘못 꿴 첫 단추는 풀어서 다시 꿰는 게 맞다. 잘못 꿴 첫 단추를 두고 둘째, 셋째 단추를 채워봐야 옷매무새가 살아날 리 없다. 패스트트랙 철회는 나 원내대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황교안 대표는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러면 한국당은 달을 보고 있을까. 한국당은 5·18과 세월호 망언 의원들에 대해 하나 마나한 징계를 내렸다. 민경욱 대변인을 비롯해 막말 논란에 휩싸인 의원에 대해서도 질책이나 근신 처분을 내리기는커녕 감싸기에 급급하다. 이러면서 신상필벌은 김정은이 문 대통령보다 낫다고 참견한다. 코미디는 김정은이 잘했다는 신상필벌이 오보로 판명났다는 거다.

주전자 속 개구리의 운명을 개구리는 몰라도 우리는 안다. 요즘 한국당의 행태가 주전자 속 개구리다. 도무지 내년 총선에서 이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여서다. 한국당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17차례 국회를 보이콧했다. 두 달에 한 번꼴이다. 유권자는 한국당이 한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