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퀴한 지하교회서 ‘초심’과 마주하다

국민일보

퀴퀴한 지하교회서 ‘초심’과 마주하다

영화 ‘기생충’으로 본 교회 양극화

입력 2019-06-0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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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지하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평안교회 지하예배당 내부 모습.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흥행몰이를 하는 가운데 영화에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공간이 있다. 백수 가족인 기택(송강호 분)네가 사는 ‘반지하’ 집이다. 넓은 정원이 있는 부잣집과 대비되는 반지하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지난주말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를 파헤친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면서 그간 어려운 교회로 찾았던 한국의 지하교회들이 떠올랐다.

지난 2일 서울 은평구 사랑의숲교회에서 만난 김영권(44) 목사는 물 한 바가지를 버리고 있었다. 지하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 고인 물이다. 교회에 햇볕이 들지 않아 습하다. 오후 8시쯤 교회 예배당의 습도계는 70%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깥보다 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교회 입구엔 크고 작은 화분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햇볕을 쬐려고 옮겨 놨다고 한다.

“화분이 지하에만 있으니 이파리가 죽더라고요. 통풍이 안 돼 그런 점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주일예배가 끝나면 햇볕이 드는 1층 유리문 앞으로 화분들을 옮겨 놓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방향제로 겨우 냄새를 잡았다.

영화 ‘기생충’에선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잣집 박 사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서 ‘지하철 타는 사람한테 나는 냄새’를 맡았다. 박 사장의 아들도 기택 가족에게 ‘다 똑같은 냄새가 난다’며 코를 킁킁거리고, 이를 전해 들은 기택의 딸은 냄새의 정체를 ‘반지하 냄새’라고 규정한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김 목사는 예배시간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교인들 몰래 잡은 적도 있다. 교인들이 그걸 보면 기겁을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지하에 미세먼지가 가라앉는다고 불평하며 떠난 교인들도 있다.

찬양사역자이기도 한 그는 “자괴감에 빠지고 근처 대형교회를 보며 부러워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하교회는 지하교회대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도움이 절실한 미자립교회이지만 선교사 두 분을 파송했고 학원사역과 교도소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안교회 고광오 목사가 지난 3일 지하예배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평안교회 고광오(50) 목사도 지하교회에서 목회한다. 21년째다. 사택도 지하교회 안에 있다. 지난 3일 만난 고 목사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는 듯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을 짚고 다니는 고 목사는 “목사 될 사람은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신학교 2학년 때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지하를 얻어 예배를 시작했다. 교회 운영이 쉽지 않다고 말리는 분도 계셨지만 하나님만 믿고 교회를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 사택에서 미소짓고 있는 고 목사.

이어 “교회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제대로 충성해 이 땅에 믿지 않는 사람을 모두 구원할 열정으로 진군할 것”이라고 했다.

주택의 위치상 건물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높이가 해당 층의 50%가 되지 않으면 반지하, 50% 이상이면 지하층이라고 한다. 이들 주택은 빛이 잘 들지 않는 데다 습도가 높고 환기 방음 등이 잘 안 된다. 물난리 같은 침수피해에도 취약하다.

교계에 따르면 지하교회는 1960∼7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함에 따라 신학교 졸업생과 목사를 대거 양산했고 교회개척이 활발해지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지하교회 목회자들은 ‘한국교회 소외계층’이다. 대부분 목회자는 사례비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다.

개척 초기 지하교회에서 3년간 목회했다는 박병득(55·샘이깊은교회) 목사는 “지상으로 교회를 옮기면 무조건 부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상으로 옮긴 뒤 교인이 감소했다. 지상의 교회 규모는 지하교회 때 절반이지만 월세를 세 배나 더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부흥 여부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예수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소강석(57) 새에덴교회 목사도 서울 송파구 지하교회에서 개척했다. 소 목사는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쥐가 득실거리는 지하교회에서 4년간 생활했다. 칙칙하고 답답한 지하교회였지만 복음전파에 사활을 걸었다”고 했다. 이어 “초대교회도 박해받은 크리스천들의 ‘카타콤’ 지하교회 시기가 있었다. 별은 어두움을 통해 볼 수 있다. 지하교회 시절을 잘 통과하고 초심을 지키며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는다면 진정한 교회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길 원한다”고 기도하는 지하교회 교인들의 통성기도 소리가 내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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