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나 아닌 남을 대신하여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나 아닌 남을 대신하여

입력 2019-06-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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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기리는 날, 오늘은 현충일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찾아오는 평등한 사건이다. 그러나 죽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이 위대한 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나 아닌 남을 대신해 죽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택이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끝없이 칭송하고 기리는 것도 그 까닭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나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 만들어 준 책상에 앉아 누군가 만들었을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 만들어 보내주는 전기도 사용한다.

해가 뜨면 누군가 운전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거나 등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만든 밥을 먹는다. 이 밖에 여러 가지 서비스를 타자로부터 받으며 산다. ‘서비스에 대한 값을 지불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일들을 모두 스스로 해결할 길은 없다. 직접 하면 더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들 게 분명하다. 노력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인간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철학이 발견한 위대한 사실 중 하나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과 인식에는 반드시 타자가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타인을 위한 환경’이 된다. 타인의 삶에 관여하며 타인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나는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타인이 만든 환경에 의해 재창조되는 존재다.

독일의 윤리신학자 트루츠 렌토르프 박사는 인간의 삶이란 ‘받아들임’과 ‘내어줌’의 교차와 균형 속에서 형성된다고 언급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꺼이 인정하고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삶을 타자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기꺼이 내줄 수 있다. ‘봉사’와 ‘희생’이라는 삶의 양식은 결코 삶의 기쁨이나 성취와 대립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봉사의 삶은 오히려 기쁨과 성취로 이끈다. 보람을 느끼는 삶을 향한 첩경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점점 희생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는 듯하다.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며 강압이고 불행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강요당하는 희생’이 아니라 ‘자발적 희생’은 반드시 필요한다. 다시 말해 ‘너와 나 사이’ 인간(人間)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필수 조건이다.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인 리처드 세넷 박사는 ‘개인주의적 퇴행’이 팽배한 사회는 불행하기 그지없다고 지적했다. 개인주의적 퇴행이란 인간이 스스로 쌓은 성벽 안에만 안주하려는 경향을 꼬집는 말이다. 더 이상 남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인간성은 사막처럼 메말라갈 뿐이라고 경고했다.

어쩌면 자기 안으로 퇴행해 다른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 나그네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나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생과 사랑은 어떤가. 언제나 위험과 수고, 아픔이 따른다. 그래서 세넷 박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점점 더 ‘비협력적인 자아’를 스스로 목격하고 이를 확산하는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로지 자기만을 위하는 삶은 공허하고 불만족스럽다. 선을 위한 봉사를 위해 인생을 바친 경우는 다르다. 행복한 삶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나의 행복만을 위한 노력, 나의 행복만을 목표로 하는 인생의 끝엔 사실 행복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

팍팍한 인생살이 중 단비와 같은 희망은 희생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자기를 희생해 친구와 이웃을 돕고 만날 때 삶의 진정한 의미가 회복되는 것이다. 현충일인 오늘, 주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다가온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우병훈 (고신대 신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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