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시각장애인 마을 돕기 ‘밀알선교단’ 출범

국민일보

[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시각장애인 마을 돕기 ‘밀알선교단’ 출범

<5> 리더로서의 자신감

입력 2019-06-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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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가운데)가 1979년 8월 밀알선교단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 성광원 맹인촌 주민들을 위한 화장실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밀알연합 제공

대흥제일교회에서 리더로 섬기는 일은 밀알 창립의 고지로 올라가는 거의 막바지 시험이었던 것 같다. 그 시험을 통과하고 나니 넓은 길이 준비돼 있었다. 교회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 같은 예배실 안에 소그룹으로 나뉘어 성경 공부를 했다. 우리 반은 세 학생 중 한 사람이 자주 결석을 해 주로 두 명밖에 안 됐지만 인원수는 내게 중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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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전체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청년들을 개인적으로 깊이 사귈 수 있었다. 많은 청년이 성경에 대해 묻거나 여러 문제를 상담해 오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청년들은 날 이 전도사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일부 청년은 총신대까지 찾아와 내가 다른 목적지로 가는 일이나 개인적 심부름을 기꺼이 도왔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일류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사회적으로 좋은 직장에 다니는 이들이 나를 그렇게 받들어준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전까지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소위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을 만나면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으로, 성경적·신학적 지식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이끌고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거기서 얻었다.

그들에게 장애인 이야기도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관심을 보이며 장애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오는 청년들이 많았다. ‘이들과 함께 뭔가를 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1979년 5월 중순 드디어 그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성광원이란 시각장애인 마을에 하계 봉사활동을 가자고 했다.

시각장애인촌 ‘성광원’을 가다

성광원은 구걸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집단거주 마을이다. 이곳에 대해 처음 들은 건 1979년 3월,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강원도 원주시가 지정해준 변두리 산 밑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들의 삶이 너무 비참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늘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뭐든지 내가 한다고 하면 협력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성광원부터 떠올랐다.

청년들 중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직장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동참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청년이 호응했다. 1979년 5월의 어느 주일 오후 성광원 봉사활동을 논의하는 첫 모임을 교회에서 갖게 됐다. 나는 봉사팀을 대흥제일교회 청년들로만 구성하는 것보다 가능하면 여러 교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참여시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확산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사전 답사에서 마주한 성광원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원주시에 속해 있었지만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걸어 들어가 외딴 산 밑 밭과 밭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에서 임시 거처 공간으로 지어준 집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고 한쪽에 독지가의 도움으로 창고처럼 지은 예배처소가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한응도 전도사가 담임을 하고 있었지만 주민 60명 중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에 거주하는 11세대의 가장 모두가 시각장애인이었는데 같은 시각장애인끼리 결혼해 가정을 이룬 집이 대부분이었다. 주변 텃밭에 채소를 심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한 주된 수입원은 구걸이었다. 60명이 사는 마을 전체에 화장실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집마다 따로 화장실이 없는 것은 물론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도 없었다. 여기저기 악취가 진동했다. 시에서 지어주지 않았으니 노동력도, 돈도 없는 그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밀알’은 청년회 이름

6월 18일 저녁 ‘원주 맹인촌 하계 봉사 활동’을 위한 첫 번째 기도회 겸 준비모임이 총신대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서 봉사활동 취지를 다시 설명하고 현지답사 내용, 사업 계획과 분야별 담당자를 정해 임명했다. 봉사활동 기간은 8월 13일부터 4박 5일로 하고 이름은 ‘밀알선교단’으로 정했다. 솔직히 그때 요한복음 12장 24절이나 ‘밀알’이라는 단어가 갖는 희생적인 의미를 생각하고 정한 게 아니었다. 단지 그 봉사활동에 가장 많이 참여하는 대흥제일교회 청년들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차원이었다. 그 청년회 이름이 바로 ‘밀알’이었던 것이다.

화장실 건축을 위해 리어카로 모래를 옮기는 모습(왼쪽 앞부터 시계방향으로 네 번째가 이 총재). 세계밀알연합 제공

주제는 ‘복음을 주자. 사랑을 주자’로 정했다. 사업은 크게 선교 분야와 근로봉사로 나눴다. 선교 분야에는 초등부, 중·고등부, 장년부 셋으로 나눠 각각 부흥집회를 하기로 했다. 근로봉사로는 두 칸짜리 공동 화장실 두 동을 지어주기로 했다.

성광원 봉사활동을 위한 ‘밀알선교단’ 단원들은 8월 13일 아침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원주 단계동으로 향했다. 마을 주민들의 환영 속에 도착하자마자 예배처소에 모여 무릎을 꿇고 기도회를 갖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4박 5일 동안 작렬하는 8월의 태양 아래 폭염과 습한 공기가 숨을 콱콱 막히게 했지만 모든 단원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일과는 오전 5시 새벽 기도회로 시작했다. 하루 일을 마친 저녁에는 단원들끼리 모여 평가회와 기도회를 했다.

성과는 무척 좋았다. 어린이 성경학교는 성광원 아이들 20여명에 인근 마을 아이들까지 찾아와 매일 40여 명이 참석했다. 중·고등부 성경공부는 10여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장년 집회 역시 주민 전원이 참석해 매시간 은혜가 넘쳤다. 새로 지은 화장실 두 동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 폐회 예배를 드리고 떠날 때는 주민과 우리 단원들 모두가 울었다.

이재서 박사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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