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문 대통령의 계산된 ‘오발탄’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문 대통령의 계산된 ‘오발탄’

입력 2019-06-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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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 띄운 건 ‘역사전쟁’의 일환
8·15 광복절 경축사 통해 속내 구체화할 가능성 커
장기집권 전략과 맞닿아 있어 내년 총선 때까지 밀어붙일 듯


문재인 대통령은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띄우면 우리 사회의 좌우 이념 대결이 첨예화될 것이라는 점을. 그럼에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상식의 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원봉을 언급함으로써 ‘상식’ ‘애국’ ‘통합’ 모두 상처뿐인 레토릭이 돼버렸다.

김원봉이 일제 강점기 당시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힘쓴 점은 인정할 만하다. 문제는 해방 이후다. 그는 북한 김일성 정권 수립에 일조했고, 김일성 밑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장관을 역임했고, 6·25전쟁 때 공을 세워 김일성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독립운동을 했으나,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눴던 사람이다. 북한군 남침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 6·25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때 국군통수권자가 김원봉을 띄운 건 적절치 않았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6·25 전몰자와 순국선열을 기리는 현충일에, 그 영령과 유족들 앞에서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었다. 심하게 얘기하면, 현충일에 국민을 향해 도발한 것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왜 알면서도 무리수를 뒀을까. ‘역사전쟁’이 떠오른다. 앞서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던 빨갱이라는 용어는 하루빨리 청산돼야 할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강조한 바 있다. ‘빨갱이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런 욕을 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들’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친일잔재 청산 작업이 벌어졌다. 우리 역사에서 ‘빨갱이’와 ‘친일파’는 섬뜩한 용어다. 권력 투쟁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수도 없이 사용돼온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걸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적지 않다. 그 단어를 대통령이 썼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전쟁을 대통령이 시작한 셈이다. 이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며 느닷없이 김원봉을 거론했다. 이를 종합하면, 친일 청산과 좌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를 통해 우리 역사를 재정립하겠다는 의도 아닐까 싶다.

역사 재정립은 문재인정부가 줄곧 추진해온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 교체, ‘100년 집권’ 전략과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반발이 있겠지만, 현재의 자유한국당 수준을 감안할 때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핵심은 ‘친일파’ 딱지다. 자유한국당이 김원봉을 언급한 대통령을 비난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친일파 정당’을 자임하는 것이냐고 역공하고 있지 않나. 문 대통령은 3·1절, 현충일에 이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속내를 구체적으로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여권의 행보는 신중하다. 여론, 특히 중도층 마음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과 서훈을 연결시키는 건 비약이라고 반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데, 설득력이 없다.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 ‘암살’이 개봉된 2015년 광복절,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약산 김원봉 선생’이란 글의 말미를 보면 그렇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과 서훈을 연결시키는 건 비약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이다.

김원봉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이 통한 걸까. 지난 2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3·1절 때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도록 보훈처에 권고했다. 논쟁이 불붙어 서훈은 불발됐다. 그때 보훈처는 이런 입장을 내놨다. ‘현행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으로는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은 선정이 불가하다. 혁신위 권고를 따르기 위해선 심사기준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 여론을 고려해 결정할 사항이다.’ 여론에 따라서는 서훈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이즈음, 한국당이 “김원봉이 보훈 유공자가 되면 김일성에게도 훈장과 보훈연금을 줘야 하느냐. 또 김일성 손자인 김정은에게 보훈연금을 줘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대한 보훈처의 답변이 모호하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 이후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이렇게 논평했다.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는 편향된 대통령, 공동체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잊은 대통령의 ‘오발탄’에 의해 더 멀어지고 있다.” 올바른 지적이다.

참, 요즘 손혜원 의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모르겠다. 손 의원 부친은 1940년 체포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광복 후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에 보훈 심사에서 6차례 탈락했다가 지난해 7번째 신청 만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돼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수사 중이나 김원봉 서훈이 거론되는 마당인데,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을까.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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