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가능 인구 급감 시대, 최소·무수혈 수술 실현 앞장

국민일보

헌혈 가능 인구 급감 시대, 최소·무수혈 수술 실현 앞장

[주목! 이 클리닉] ⑤ 고려대안암병원 무수혈센터

입력 2019-06-10 19:23
고려대 안암병원 의료진이 심장환자를 대상으로 수혈을 최소화하는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장비가 수술 중 흘러나오는 피를 재활용하는 셀세이버다. 고려대병원 제공

10여년 전부터 양쪽 무릎관절 통증으로 약물치료를 받아오던 67세 여성 B씨. 2~3년 전에는 통증이 더 심해져 지난해 말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인공관절수술을 받았다. 대개 양쪽 무릎을 동시 수술하는 경우 출혈량이 많아 2유닛(팩) 이상의 혈액(적혈구제제)을 수술 도중 넣어줘야 한다. 하지만 B씨는 수혈받지 않는 무수혈 수술을 원했다. 의료진은 이를 위해 3주 전에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고용량 철분제를 넣어주고 수술 전날 지혈제(수술 중 배어 나오는 피 최소화)도 투여했다.

B씨의 수술 전 헤모글로빈 수치는 14.2g/㎗로 정상 범위(14g/㎗ 안팎)였다. 수술 중에도 실혈을 줄이기 위해 국소 지혈제를 쓰는 등 세심한 관리를 통해 수술 후 헤모글로빈 수치를 11.1g/㎗으로 유지했다.

국가수혈가이드라인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7.0g/㎗ 이하(혹은 출혈량이 전체 혈액의 30%를 넘을때)일 때 수혈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수술 다음 날에는 먹는 철분제를 사용해 빈혈을 관리했다. 수술 후 6일째 수술 부위에서 피가 배어나와 한때 헤모글로빈 수치가 7.7g/㎗까지 떨어졌으나 철분제 추가 투여 등 재빠른 조치로 곧 회복됐고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수술 시 피를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는 ‘무수혈’ ‘최소 수혈’이 의료계에 확산되고 있다. 수술 전·후 수혈 대체 치료를 받게 하거나 수술 도중 실혈을 줄이는 여러 보완적 조치를 취해 최대한 수혈을 피하자는 개념이다. 현재 전국 약 20여개 병원이 무수혈 혹은 최소수혈센터를 운영 중이다. 특히 고려대안암병원은 무수혈센터를 개소하고 수술장 풍경을 선도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아시아 최초 최소수혈외과병원 실현이 목표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장은 10일 “기존 무수혈센터가 대부분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국한돼 이용됐다면 우리는 일반 환자들에게도 적정 수혈 혹은 최소 수혈을 권하고 적용하려는 게 다르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모든 치료가 무수혈로 할수만 있다면 매우 이상적이겠으나 실제 현장에선 그렇지 못하다. 반드시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수혈하고 굳이 수혈을 안해도 지장 없는 환자에게는 대체 치료를 활용해 수혈로 인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혈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작용 위험을 갖고 있다. 혈액형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수혈 사고뿐 아니라 혈액형은 문제 없더라도 수혈은 남의 피가 몸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면역거부반응(발열, 알레르기, 호흡곤란, 저혈압, 급성 폐손상 등)이 생길 수 있다. 수혈받은 사람이 수혈받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박 원장은 “혈액 안에는 200개 이상의 단백질 종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약 25%는 어떤 성분인지 규명되지 않았으며 타인의 몸 속에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수혈을 최소화하면 이런 위험에서 상당부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젊은 헌혈 인구가 급감하면서 혈액공급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수혈 줄이기는 꼭 필요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만 16~19세 헌혈자는 2013년 105만여명에서 2017년 91만3000여명선으로 크게 줄었다. 20대도 같은 기간 123만1000여명에서 116만6000여명으로 감소했다. 헌혈을 많이 하는 10, 20대는 감소하는 반면 수혈을 많이 받는 고령 환자들은 빈혈이 많은 데다 혈관 상태가 약하고 지혈 작용이 원활하지 않아 수술 중 출혈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만큼 수혈 요구량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헌혈 가능 인구는 16~69세 건강한 사람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약 3900만명인 헌혈 가능 인구가 해가 갈수록 감소해 2050년이 되면 2900만명으로 줄어든다. 박 원장은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혈액을 받을 수만 있는 노년층은 급격히 늘어나고 혈액 관리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면 조만간 ‘혈액 파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혈을 최소화하면 혈액제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국가비용도 줄일 수 있다.

수혈을 줄이려면 출혈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수술 전 빈혈이 있는 경우 고용량 철분제나 조혈촉진제를 주사해 미리 보충해 준다.

정밀한 로봇수술도 출혈을 줄이기 위한 여러 옵션 중 하나다. 혈액 재활용 장비인 ‘셀세이버’도 많이 쓰인다. 수술 중 흘러나오는 피를 모아 원심분리기로 적혈구 성분만 걸러내 다시 환자에게 집어넣어주는 것이다. 셀세이버는 과도한 출혈이 예상되는 수술에 적용할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 혈액 1~2유닛(500~800cc) 가량의 수혈을 줄일 수 있다. 수술 후 배액관을 통해 나오는 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술 부위 안에 지혈제를 삽입했다가 일정시간 후에 제거해 출혈량을 3분의 1 이하로 줄이기도 한다. 고용량 철분제(1회 주사 15만~20만원)와 셀세이버(20만~30만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부담이 크다.

박 원장은 “예전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안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엔 수혈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거나 부작용을 미리 알아보고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추세”라면서 “다행인 것은 수 년전과 달리 정부도 최소 수혈, 적정 수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책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무분별한 수혈 치료를 근절하기 위해 수혈적정성 평가를 의료기관 질 평가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최소 수혈 관련 치료제들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도 조만간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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