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국이 식지 않는 거리’가 좋다지만

국민일보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국이 식지 않는 거리’가 좋다지만

입력 2019-06-1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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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녀 주거 이상적인 거리 육아도움 때문 신 대가족 추세
존중과 배려 없인 불화 가능성… 가족간이라도 규칙 정할 필요


30년도 더 된 얘기다. 처음 신문기자가 돼 대한노인회 소속 간부 노인을 취재한 뒤 이런 기사를 썼다. “요즘 노인들은 굳이 자녀와 한 집에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며느리가 시어른과 함께 사는 걸 내심 꺼리기 때문에 한솥밥 먹으면 서로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사는 걸 바라진 않는다. 손주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부모가 아프면 아들이 금방 달려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국이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살길 원하는 노인이 많다.”

당시 취재원 노인은 ‘국이 식지 않는 거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들이 저녁에 맛있는 쇠고기국을 먹다 어머니 생각이 날 때 냄비를 들고 갖다드리는 데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 또 어머니가 끓인 된장찌개를 아들이 자기 집까지 가져가는 데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말합니다. 승용차가 있으면 조금 멀어도 되지만 걸어서 오가야 한다면 더 가까워야겠지요. 우리 부부는 아파트 맨 위층, 아들 부부는 같은 아파트 1층에 사는데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200자 원고지 5장 남짓 자그마한 기사에 데스크가 ‘국이 식지 않는 거리’란 제목을 붙여줬다. 햇병아리 기자가 지나가는 노인 말 한마디를 잘 포착했다며 칭찬받은 기억이 아련하다.

세월을 더듬어보면 지난 30년 동안 우리네 가족 주거 형태가 많이도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노인이 같은 도시에 거주하는 자녀와 떨어져 다른 집에 사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주로 장남의 몫이었지만 아들이건 딸이건 한 사람은 반드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상식이었다. 노인 단독세대는 자녀와의 불화가 심각한 케이스인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취재원 노인은 그런 시절에 자녀와 한 집에 사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독립심과 배려심을 갖춘 다소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어떤가. 정반대로 결혼한 자녀와 한 지붕 아래 사는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결혼과 동시에 자녀를 내보내는 게 상식이다. 부모 모시고 살려는 며느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며느리 데리고 살려고 작정하는 ‘간 큰’ 부모도 거의 없다. 부모나 자녀 모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동거를 불편해하기 때문이겠다. 마음 편한 딸과도 함께 사는 걸 꺼릴 정도다. 사위가 편하지 않단다. 노인이 쇠약해지거나 병을 얻으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는 추세여서 부모 자녀 한집살이 모습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다만 별거하되 ‘국이 식지 않는 거리’에 사는 걸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개 젊은 부부가 부모 집 근처에 살길 원한다. 효심과 자녀사랑이 바탕에 깔렸겠지만 부모 자식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 아닌가 싶다. 육아가 가장 큰 이유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속 확대되면서 부모가 육아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출산 자체를 시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친정이든 시집이든 부모한테 육아를 의존하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이 살게 된다. 부모 입장에서도 손주사랑 맘껏 즐길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고 부모가 연로해서도 계속 한동네에 살 경우 부모 부양에 도움 될 것이기에 좋아 보인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인 고독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 이해관계가 반영된 세대 간 품앗이일망정 권장할 만한 윈-윈이라고 본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가 더 확산되면 꽤 오랫동안 지속돼온 핵가족화가 사실상 힘을 잃고, 새로운 형태의 대가족제도가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핵가족이면 어떻고 대가족이면 어떤가. 가족 구성원들이 편하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나도 언젠가 딸아이들 결혼하더라도 가까이 살며 손주 매개로 자주 만나는 노년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신형 대가족이 진정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과 배려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 지금까지 묘사한 시어머니-며느리, 장모-사위 관계라면 가까이 살 이유가 없다. 유치원 다니는 손녀 하나 건사하지 못해 가족관계가 뒤틀어지는 모습은 시청하기에 부담스럽다. 박정수가 연기하는 시어머니도, 김해숙이 맡은 장모도 존중과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진작 파트타임 육아도우미라도 쓰질 그랬을까.

60대 초반 지인은 출가한 두 딸을 지근거리에 두고 산다. 평소 원하던 걸 이뤘으니 성공이다. 손주 돌보며 딸 사위와 더불어 사는 모습이 일단 행복해 보인다. 두 사돈댁까지 근처인 것은 덤으로 좋단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면 과연 저게 정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이런 말을 해서다. “사랑하는 아이들 옆에 끼고 사는 게 정말 좋다. 하지만 밤낮없이 왁자지껄 부대끼다 보니 내 몸이 많이 피곤하긴 하다.”

가족이라도 가까이 살다보면 정신적 육체적 부자유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 알게 모르게 상대방 행동거지를 간섭함에 따라 불화의 싹이 돋아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갈등으로 발전하기 전에 예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라이프사이클, 육아방식 등에서 생기는 세대 차이와 관련해 상대방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건 금물이다. 또 상대방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 원하지도 않는데 주고 싶다고 맘대로 주는 건 결코 행복의 길이 아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보면 부모 자식 간이지만 양측을 규율하는 원칙 같은 걸 세밀하게 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국이 식지 않는 거리’가 ‘국이 오가지 않는 거리’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상호 존중과 배려만이 이런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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