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안에 동역자가…” 탈출 대신 선실로

국민일보

“배 안에 동역자가…” 탈출 대신 선실로

기감 충청연회 ‘아펜젤러 순직 117주기 추모예배’

입력 2019-06-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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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감리교 첫 선교사 헨리 G 아펜젤러(1858~1902·동판)의 추모예배가 11일 충남 서천 아펜젤러순직기념관에서 열렸다.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선교사는 1902년 6월 11일 인천 제물포에서 전남 목포로 일본 상선 구마가와마루를 타고 가다 서천 인근 해상에서 충돌 사고를 당했다. 탈출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는데도 한국인 동역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선실로 들어갔다가 실종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는 이날 아펜젤러순직기념관과 붙어있는 동백정교회에서 117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충청연회 100여명 목회자와 성도들은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라고 찬송가 373장을 부르며 참사 당시의 밤바다를 떠올렸다. 사고 직후 영자지 더코리아리뷰(The Korea Review)는 생존자인 광산업자 JF 보울비의 증언을 토대로 이렇게 보도했다.

“밤 10시쯤 그(보울비)는 아펜젤러와 비스켓을 곁들인 차를 함께 마신 후 각자 침실로 들어갔다. 아펜젤러 객실은 그의 맞은편이었다. 배는 기적소리도 없이 순항하고 있었다. 몇 분 후 아무런 경고 없이 끔찍한 충돌이 있었고 그 순간 아펜젤러는 ‘무슨 일인가?’라고 외쳤다. 보울비는 잽싸게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 승강구로 나갔는데, 아펜젤러가 바로 앞에 있었다.… 아펜젤러는 상당히 흥분된 상태에서 뭔가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배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보울비보다 탈출하기 좋은 조건이었지만 탈출하지 않고 물이 허리까지 잠긴 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그의 행동이 정황상 한국인 조사 조한규와 어린 여학생을 구출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밤 구마가와마루와 기소가와마루의 충돌로 승객 46명 중 18명이 실종됐다. 구마가와마루의 선장이 침몰 당시 가장 먼저 탈출해 세월호 참사와 여러모로 닮았다. 아펜젤러순직기념관을 돌보는 남광현 동백정교회 목사는 “학창시절 수영 선수였던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어 조사인 조한규와 목포 고향 집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받은 연동여학교 학생을 찾다가 배와 함께 침몰했다”고 설명했다. 남 목사는 동백정교회 재건축 과정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교회와 순직기념관을 지키고 있다.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117주기 추모예배가 열린 11일 충남 서천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옆 동백정교회에서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장이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추모예배에선 감리교 원로인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이 ‘감리교회와 통일선교’란 제목으로 특별 강연을 했다. 유 원장은 극동방송에 재직하던 1970년대부터 모은 북한과 중국 선교 관련 편지 등 1000여점을 순직기념관에 기증했고 기념관은 이를 2층에서 특별 전시하고 있다.

유 원장은 “1866년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이후 1887년 평양에 제일 먼저 들어가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한 이가 바로 아펜젤러 선교사”라며 “북녘에서도 감리교회는 왕성했다”고 밝혔다. 유 원장은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통일도 그럴 것”이라며 통일준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7년 4월 23일 평양을 방문해 쓴 일기 형식의 기도문 마지막 문장을 소개했다. “지금은 씨 뿌릴 시기, 좋은 씨가 싹이 나고 뒷날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서천=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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