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화룡점정, 이정은… “귀염상이라 걱정했는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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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화룡점정, 이정은… “귀염상이라 걱정했는데” [인터뷰]

영화 ‘기생충’서 존재감 폭발한 배우 이정은

입력 2019-06-12 00:05 수정 2019-06-12 00:17
영화 ‘기생충’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정은. 요즘 ‘대세’라는 말에 그는 “대세는 라미란 같은 배우이고 나는 그냥 주변에 흔한 언니”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저와 같은 배경을 가진, 익숙함을 깨는 배우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윌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을 본 관객이라면 십중팔구 봉준호 감독의 재능에 감탄했을 것이다. 촬영부터 미술 의상 연출까지 모든 지점에서 부족함을 찾기 어렵다. 섬세하고도 정교한 만듦새가 과연 ‘봉테일’이라는 찬사를 부른다. 그런 봉 감독이 꼽은 이 영화의 최고 강점은, 다름 아닌 연기다.

“이 영화에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건 전부 배우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봉 전 열린 제작보고회 당시 봉 감독은 이런 말을 했었다. ‘기생충’에서 단연코 빛나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라는 단언이자 호언이었다.

송강호를 필두로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출중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채웠고, 캐릭터 소화력은 예상대로 훌륭했다. 한데 관객들을 완전히 매료시켜버린 이는 따로 있다. 베일에 가려졌던 박 사장(이선균)네 가정부 문광 역의 배우 이정은(49)이다.

그의 등장을 전후로 장르 자체가 바뀌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의 존재감이 전체 극을 압도했다는 평가다. 핵심 키를 쥔 인물이어서 개봉 전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선택이 오히려 그를 둘러싼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은 셈이 됐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정은이 연기한 미스터리한 가정부 문광.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은 “봉 감독의 엄청난 전략에 제가 득을 본 것 같다”며 웃었다. “요즘 밖에 돌아다니면 많이들 알아봐 주세요. ‘기생충이다’라거나 ‘문광 언니’라면서요(웃음).”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독자는 아래 내용을 걸러 읽는 편이 좋겠다. 극 중 박 사장네 대저택을 관리하는 문광은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지하공간에 남편 근세(박명훈)를 몰래 숨겨두고 생활하는데, 기택(송강호)네 가족의 등장으로 갈 곳을 잃게 된다.

문광·근세 부부는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였던 셈이다. “배우로서는 힘든 시간이었죠. 명훈씨와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영화 속 우리의 운명이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웃음). 촬영이 끝나고 사이가 더 돈독해졌어요. 흥행 스코어가 올라갈 때마다 함께 뿌듯해하면서요.”

폭우가 쏟아지는 밤, 기택네 가족이 점령한 저택에 문광이 찾아오면서 영화는 순식간에 스릴러로 전환된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공포감을 느낄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사실 제 얼굴이 귀염상이잖아요(웃음). 관객 반응을 보고 용기를 얻었죠. 속내를 모르는 상황이라 섬뜩해 하시더라고요.”


앞서 봉 감독이 “출연해준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이정은은 “시키는 대로 다 해서 그런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연극 연출부로 오래 일해서인지 연기할 때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감독의 아이디어를 응원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과의 작업은 세 번째다. ‘마더’(2009)에 이어 ‘옥자’(2017)에선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를 담당했다. “이전엔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봉 감독은 늘 좋다면서도 오케이를 안 하시거든요(웃음). 한데 이번엔 재미있더라고요. ‘아, 다른 걸 보여 달라고?’ 서로를 믿으니 신이 나는 거죠.”

이정은은 반짝 주목받은 스타가 아니다. 1991년부터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2013년 영화와 드라마로 넘어와 감초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근 ‘미스터 션샤인’(tvN·2018)에서는 애기씨(김태리)를 보살피는 사랑스러운 보모 함안댁을 연기해 ‘함블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정은은 “이번엔 봉 감독의 완벽한 계획 안에 들어갔던 것 같다. 내겐 행운이었지만, 이 맛에 중독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고 경계했다. 이어 “변한 건 없다. 감독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연기를 해나갈 것이다. 결과는 어차피 모 아니면 도”라며 미소를 지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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