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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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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별세] 극한 고통·환희 양극단 오간 삶

입력 2019-06-12 04:02
김대중과 함께하는 삶은 험난했지만, 영광도 있었다. 1990년 10월 당시 야당 총재로서 여당의 내각제 개헌 추진에 항의해 8일째 단식투쟁 중인 남편을 이희호 여사가 보살펴주는 모습.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이희호 여사의 삶은 격동의 한 세기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분단, 6·25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을 통과했다. 그때마다 이 여사는 신앙과 지성의 힘으로 시대를 끌어안았다. 그 자신의 표현처럼 “극한적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의 결정적 순간들을 꼽아봤다.

미국 유학, 엘리너 여사

이 여사는 1954년 8월 15일 여성 지도자를 꿈꾸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 여사는 유학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를 꼽았다. 이 여사는 엘리너 여사에 대해 “남편이 상원의원, 주지사,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내내 부귀영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의 그늘진 곳에 버려진 약자들을 돌보고 대변했다”며 “남편 사후에도 세계의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과 여성을 지도자로 키우고 포용하는 미국 사회가 무척 경이로웠다”고 평가했다.

1962년 5월 이희호 여사의 외삼촌 집에서 올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결혼식.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과의 만남, 민주화운동

이 여사는 “김대중과 나의 결혼은 모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1962년 결혼할 당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노모와 어린 두 아들을 거느린 가난한 남자”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정치 재수생”으로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과 결혼 후 ‘길고 험난한 여정’은 시작됐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이던 1976년 3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강조한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 부부가 함께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이 여사는 당시 조사받으면서 “민주 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이곳을 거쳐 가는데 나도 동참할 수 있게 돼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했다. 신군부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면서 유신 시절보다 더한 고난이 시작됐다. 그해 5월 김 전 대통령과 큰아들 홍일씨 등 많은 이들이 체포됐다. 모두가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이 여사는 당시에 대해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서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두려워 말라’는 성경 ‘이사야서’를 수백 번 읽었다고도 회상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구명운동을 하면서 82년 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독대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당시 회동에 대해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고 회상했다.

1995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아태평화재단 창립 1주년 축하연에서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6월항쟁과 대통령 당선, 노벨상 수상

이 여사는 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대해 ‘절반의 승리’라고 평가한 바 있다.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지만 김대중 김영삼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두 사람은 독재 앞에서는 동지였다. 그러나 그 밖의 문제에서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고 회상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4수 끝 당선이었다. “갖은 고난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 이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국민들 잘살게 해주세요.”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청와대 입성 첫날 나눈 대화다. 이 여사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남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영광만 있진 않았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02년 아들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남편이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들들이 한없이 야속했다”며 “주여, 저의 기도가 부족했습니까? 저희가 교만했나요?”라고 기도했다고도 밝혔다.

이희호 여사는 2000년 6월 당시 김 대통령과 함께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 전 대통령 서거, 그 이후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입관 전날 마지막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주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10년 뒤 이 여사도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이 여사는 유언으로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으로 이용하고, 노벨 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는 뜻을 남겼다.

임성수 신재희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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