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 수억 날린 전도사, 매주 회복의 길 걷는다

국민일보

‘도박 중독’ 수억 날린 전도사, 매주 회복의 길 걷는다

7년째 서울 남산 오르는 유성필 기독교중독연구소장

입력 2019-06-1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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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필 기독교중독연구소장 등 참석자들이 2016년 10월 서울 남산에서 ‘회복으로 가는 길’을 마친 뒤 함께 기도하고 있다. 기독교중독연구소 제공

걷고 또 걸었다.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한번 빠진 중독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건 쉽지 않았다. 몇 시간 걸으며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2013년 1월 5일, 남산에서 ‘중독예방과 회복을 위한 남산 걷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매주 ‘회복으로 가는 길’을 선포하며 중독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명 두 명 함께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의 회복을 돕고 싶은 비전이 생겼다. 유성필(53) 기독교중독연구소장 부부의 이야기다. 유 소장과 부인 나카가와 애리(47)씨를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로 서울성남교회에서 만났다.

우리는 언론 보도에서 인터넷·휴대전화·게임·술·도박·담배·마약·경마·성 중독 등 다양한 중독에 대한 뉴스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선한 행동은 지속하기 어려운데 죄는 중독성이 있다. 중독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 공동체부터 서서히 파괴한다.

유 소장 가족도 중독의 폐해를 절실하게 느꼈다. 어머니의 별세로 공허함이 있던 유 소장은 2006년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해 빚을 졌다. 이 빚을 갚으려고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댔는데, 유 소장 가정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전세인 집은 월세로 바뀌고 어느새 보증금도 날아갔다.

“중독에 빠지면 주변이 안 보여요. 돈을 잃으니까 만회하려는 욕구밖에 없어요. 사랑해야 할 가족, 이웃, 저 자신조차 돌볼 여유가 조금도 없지요. 도박으로 갖고 있던 돈을 다 날리고 3억원 정도의 빚까지 졌어요.”(유 소장)

도박을 끊겠다고 각서까지 썼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시간을 7년간 반복하다 유 소장 가족은 2013년 서울역 쪽방촌에까지 오게 됐다. 3평(9.9㎡)짜리 집에서 1년 3개월을 지냈다. 유 소장은 어떻게 하면 돈을 빌리고 도박을 잘할 수 있을지만 연구했기에 교회에 와서도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미 단절된 상태였다.

“생지옥이었어요. 남편이 밉고 그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임신했는데도 먹을 게 없고 가스가 끊기는 등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죠.”(나카가와씨)

유 소장은 쪽방촌에 가서야 현실을 직시했다.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됐다. 유 소장은 아내, 딸과 함께 남산 걷기를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걸으면서 평상시 보지 못했던 자연을 보며 회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독의 문제가 나 혼자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사실에 용기와 희망을 품는 시간이자, 회복으로 가는 의지의 첫걸음이었다. 현재는 10여명이 참여한다.

“그때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금까지 걷고 있어요. 걸으면서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끼리 마음을 터놓고 말하는 시간을 가졌죠. 중독이라는 아픔과 상처는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공통된 주제였어요. 끝이 없을 것 같은 중독의 깊은 수렁에서 하나님이 저를 건지셨어요. 중독의 고통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서 저부터 변화시켜주셨습니다.”(유 소장)

걷기를 마친 뒤 ‘회복 모임’을 가졌다. 한 주간 어떻게 생활했는지, 힘든 유혹은 없었는지 일상을 나눴다. 중독을 이기겠다고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다른 사람과 모임을 꾸준히 가지면서 많은 이들과 회복을 경험했다. 2005년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의 ‘가족사랑만들기’ 프로그램에서 배우다 중단한 내면세계를 2012년 다시 배우면서 깨닫는 게 많았다. 나카가와씨는 “남편이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내면에 있는 연약함을 알고 채워가는 과정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겨울 유성필 기독교중독연구소장이 남산을 걷던 중 눈 쌓인 바위에 ‘회복으로 가는 길’을 새긴 모습. 기독교중독연구소 제공

유 소장 부부는 다른 이의 회복을 돕기 위해 2015년 기독교중독연구소를 열었다. 교회에는 중독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이 별로 없어서 중독자와 그의 가족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곳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독자들을 보면 나쁜 사람보다 아픈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어요. 가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일시적인 도박이나 약물, 알코올, 사람 등으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고요. 그러다 보니 중독에 빠지지요.”(유 소장)

연구소는 매년 봄과 가을 12주 과정의 ‘중독회복상담학교’를 열어 중독에 대해 공부하고 중독자와 가족의 전인격 치유를 위한 모임을 한다. 기수당 80여명이 참석한다. 중독에 관한 다양한 전문가들이 강사로 활동하는데 이 중 중독에서 회복된 경험이 있는 강사들이 있어서 강의가 더 진정성이 있다.

“중독자들은 중독에서 회복된 분들의 강의를 들으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어요. 앞날이 막막한 분들이 이곳에서 배운 것을 생활에 적용하시고 회복된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나카가와씨)

유성필 기독교중독연구소장과 부인 나카가와 애리씨가 최근 서울성남교회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유 소장은 일본 오사카순복음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다 어학연수를 온 나카가와씨를 2002년 12월 24일 소개받아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09일 만에 결혼했다. 한·일 커플은 다른 이를 돕는 지금이 천국이라고 했다. 나카가와씨는 결혼 전 방문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뜨겁게 기도하는 한국 청년들을 보며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다고 소원한 기도를 기억했다. 남편이 방황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순복음영산신학원을 다니며 목회자로서 준비된 과정이 헛된 길이 아니라고 믿는다.

유 소장 부부는 각종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영적인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가족끼리 잘 소통하고 건강한 가정으로 회복된다면 중독에 빠질 이유가 없어요. 중독 회복을 돕는 영적 공동체 설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유 소장)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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