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노희경] 고마워요, 청년

국민일보

[빛과 소금-노희경] 고마워요, 청년

입력 2019-06-15 04:04

한때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골프 여왕’ 박세리 선수를 보는 즐거움으로 산 적이 있다. 밤낮이 바뀌는 일상에도 아랑곳없이 바다 건너 먼 이국땅에서 벌어지는 두 선수의 경기에 열광했다. 어깨에 큰 돌덩이 하나씩은 얹은 듯 온 국민이 잔뜩 움츠리며 살던 외환위기 시절 이야기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1998년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박세리는 공이 해저드에 빠지는 위기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못에 두 발을 담근 채 ‘맨발 샷’을 날렸다. 그리고 우승. 박세리가 두 팔 벌려 환호할 때 국민 모두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같이 웃었다.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강속구를 던질 땐 온갖 시름을 그의 공에 함께 실어 날렸다. 당시 그들은 경제한파에 살아갈 힘도, 재미도 없던 국민에게 위로와 감동을 안겨줬다. 이것이 젊음의 힘이다.

20여년이 지난 요즘 우리 사회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실업자 수와 실업률이 지난 5월 기준으로 2000년 이후 최고란다. 각종 경제지표가 장기 침체를 경고하는데, 정치권에선 연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끔찍한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뉴스 상단을 장식한다. 오죽했으면 김훈 작가는 최근 한 캠프에서 “우리 사회는 악다구니와 쌍소리, 욕지거리로 날이 지고 샌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어진 세상”이라고 한탄했을까.

박찬호, 박세리가 그랬듯 피로감 쌓이는 세상에서 나는 요즘 이들 청년 때문에 웃는다. 팝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 ‘캡틴’ 손흥민이다. 딸을 통해 처음 BTS를 알게 됐는데, 7명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다 보니 어느새 요즘 아이들 말로 이 나이에 ‘덕질’을 하고 있다. 새벽에 손흥민의 경기를 챙겨보고, 아침 일찍 출근해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다. 최근엔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경기에 푹 빠졌다. 이 선수들이 결국 일을 냈고,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우승에 도전한다. BTS, 손흥민, 젊은 축구선수들이 암울한 우리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들의 밝은 에너지로 국민은 위안을 얻는다. 웃을 일 없는 요즘에 참 바람직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젊음이 부러웠던 적이 또 있을까. 최근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 소개된 ‘청년이 주목한 교회’들을 읽으면서 더 그랬다. 한국교회는 청년사역의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젊은이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모이기에 힘쓰고 뜨겁게 부흥을 갈망하고 있다. 부산행복한교회(김성철 목사)는 부산에서 가장 젊은 교회로 손꼽힌다. 자체 예배당이 없어 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데도 1000여명이 출석한다. 성도 중 20~40대가 750명에 이른다고 한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예배는 역동적이고 경쾌하다. 랩을 하며 파격적으로 찬양을 부른다는데, 참 젊은이답다.

오메가교회(황성은 목사)는 대전지역 대학들에서 미래세대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 한남대에서 80여명, 충남대에서 250여명의 학생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돼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훈련을 받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에 있는 넘치는교회(이창호 목사)는 지하에서 예배를 드린다. 매월 마지막 주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네버엔딩 워십’을 드리는데, 100여명의 청년이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 높여 찬양을 부르거나 기도한다.

청년이 주목한 이들 교회의 공통점은 다른 게 아니다. 온전히 예배에만 집중한다는 거다. 시간 가는 것을 잊은 채 마음껏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 넘치는교회는 5시간 넘게 예배드린 적도 있단다. 뜨겁게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그런 젊음의 열정이 부럽다.

요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한 목사의 거친 막말 때문에 심신이 지쳐가고 있다. 교계 원로들까지 나서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이 목사의 편향된 정치적 주장은 멈출 줄 모른다. 솔직히 젊은이들 보기에 낯 뜨겁고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이 젊은이들로 인해 또 웃는다. 교회에서 말씀 듣고, 공동체에서 교제하며 영적 회복을 경험한 이들은 가정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린다. 그들의 밝은 에너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다. 다시 생각해봐도 요즘 젊은이들,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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