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나를 녹이고 죽임으로써 열매”… 단체 이름 ‘밀알’로

국민일보

[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나를 녹이고 죽임으로써 열매”… 단체 이름 ‘밀알’로

<6>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입력 2019-06-1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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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오른쪽 첫 번째)와 단원들이 1980년 10월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제1주년 기념예배에서 특송을 하고 있다.

1979년 대학의 가을 학기는 유신 정권의 막바지 폭압정치로 인해 불안한 상황에서 시작됐다. 대학가는 계속 소란스러웠고 이런저런 유언비어가 난무했으며 걸핏하면 휴강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내 가슴속에 커다란 씨앗으로 자리 잡은 ‘밀알’은 그 싹을 움트기 위해 맹렬한 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새로 배정받아 들어간 기숙사는 311호. 그 311호가 ‘밀알’의 기본이 구성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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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원 봉사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드디어 장애인 선교를 본격화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하게 한 도화선이었다. 성광원에서 돌아와 8월 말부터 선교단 발족 준비에 착수했다. 한 번 활동하고 해산할 일회성 봉사활동 단체와는 다른,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장애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기관이라 생각했기에 아무렇게나 시작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1개월 동안 하나님께 매달리며 머리를 싸매고 구체적 사항들을 구상했다. 길다고 볼 수 없는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지혜를 주셨다. 우선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성광원 봉사활동의 이름을 밀알로 정할 때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무더위와 싸워가며 사역하는 동안 밀알로 이름을 지은 게 정말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남을 돕는다는 것, 특별히 장애인을 위해 사역한다는 것은 ‘나를 녹이고 죽임으로써 열매를 맺는 일’이란 사실을 실감했다. 새삼스레 요한복음 12장 24절을 펼쳐 그 의미를 묵상했다. 희생과 죽음을 통한 새 생명의 탄생, 그 메시지가 내가 섬기는 장애인 선교 단체의 정신이 돼야 한다는 영감이 가슴을 지배했다.

주제성구를 정하고 나니 이름을 ‘선교단’으로 할 것인지 ‘선교회’로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됐다. 그때까지 내가 들어 본 모든 선교 기관은 모두 ‘선교회’였고 ‘선교단’이라 부르는 곳은 중창단으로 활동하는 곳뿐이었다. 성광원 봉사활동은 계획된 기간에 예정된 임무가 끝나면 해산될 임시적인 단체였기에 ‘선교단’이라고 하는 게 옳았지만 우리는 잠시 있다가 해산될 단체가 아니므로 ‘선교회’로 명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숙고 끝에 결정한 이름은 ‘선교단’이었다. 과연 이 세상에서 영원할 수 있는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 에서다. 예수님이 오시면 세상의 모든 선교단체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 없이 즉각 해산돼야 한다. ‘선교회’라고 이름을 붙여 마치 영원할 것처럼 안주하며 일할 것이 아니라, 긴박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회’가 아닌 ‘단’으로 결정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에 쫓기는 심정을 갖고 역동적으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미를 살리고 싶었다.

1981년 10월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제2주년 기념예배에서 수화합창단이 특송하는 모습.

3가지 목표로 기틀 잡다

3대 목표를 정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작업이었다. 장애인 선교를 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속적으로 이를 이끌어 주는 구체적이고 함축된 목표가 제시돼야 했다. 최종적으로 설정한 것이 전도 봉사 계몽이었다. 고민하며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지나간 삶을 반추하게 하셨다.

가장 소중했던 순간은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었다. 절망과 좌절의 나라에서 희망과 생명의 나라로 일시에 옮겨 놓는 것, 그것은 단연코 복음이었다. 결국 장애인에게 가장 시급한 게 그 복음이었다. 복지도 교육도 돈도, 세상의 그 어떤 제도도 복음을 대신하지 못한다. 바로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번째 목표로 설정한 것이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한다’였다.

실명 이후 고통스러웠던 나의 삶을 다시 회상해 봤다. ‘그 순간에 그분이 그 과정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성광원을 생각했다. 화장실 두 동을 지어줬을 때 얼마나 좋아하던가. 그것이 아직 믿음이 부족한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 일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모든 장애인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가난에 시달리곤 한다. 그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진심을 담은 도움은 그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해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두 번째 목표를 ‘장애인을 도와준다’로 정했다.

‘교회와 사회에 장애인에 대해 바로 알린다.’ 계몽이라는 세 번째 목표는 장애인을 선교하고 돕는 일을 내가 혹은 우리가 다 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 일은 한국교회가 나서야 하고 세계교회가 협력해야 할 일이다. 장애인의 복지 증진도 국가나 기업, 사회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교회들은 장애인 선교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국가나 기업들도 장애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장애인을 잘 몰라서, 그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잘못된 인식을 바꾸게 해야 하고 잘하도록 일깨워야 한다. 내가 대흥제일교회 청년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성광원 시각장애인을 돕는 일에 나서게 했던 게 좋은 예였다. 나름대로 그렇게 판단해 계몽이라는 주제를 세 번째 목표로 설정했다.

이재서 박사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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