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택 목사 크리스천의 생존] 결국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실패했나

국민일보

[김서택 목사 크리스천의 생존] 결국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실패했나

<6> 중보기도의 위력

입력 2019-06-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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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동부교회 청년들이 2015년 경북 김천 경북청소년수련원에서 개최된 여름수련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대구동부교회 제공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주위 여러 성의 운명을 두고 하나님과 협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정치인이거나 학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살려달라고 담대하게 중보기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 남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조건은 딱 한 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서 사는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않아도 그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해주신다.

하나님은 말씀을 들은 종들을 그분의 친구로 여겨주신다. 그리고 친구 모르게 어떤 일을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알려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지 않고 격렬하게 반발한다. 절대 안 된다고 반발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해 크게 오해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공연히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그때까지 그 도시의 멸망을 막고 계셨다. 하나님은 망하게 하시는 쪽보다 망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더 이상 심판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소돔과 고모라에 죄가 그야말로 꽉 찼기 때문이다. 정화조에 오물이 가득 차면 비우지 않을 수 없듯 말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협상을 시도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50명이 있을지라도 이 성들을 멸망시키겠느냐고 여쭤봤다. 아마도 거기에 의인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그토록 타락했는지 잘 몰랐다.

아브라함은 수만명의 목숨과 의인 50명의 목숨을 걸고 거래를 시도한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말하는 의인은 어떤 사람일까. 아브라함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믿지는 않지만, 동성애를 반대하고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는 덜 타락한 사람들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오직 아브라함만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돔에도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협상에 응하신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50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신다. 그럼 그 성들은 다시 소생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아브라함이 불안해한다. 천사가 의인의 수를 헤아리다가 혹시 한두 명 빼놓을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협상한다.

아브라함은 왜 그런지 몰라도 의인의 숫자를 자꾸 줄여나간다.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줄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왜 의인의 수를 줄였을까. 어떻게 해서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가 아무리 커도 의인의 숫자가 그들을 살린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을 받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가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즉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은 그 순간 아브라함의 기도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왜 의인의 숫자를 10명에서 더 내리지 않았을까. 하나님께 기왕 매달리는 김에 5명, 아니 2명까지 내려도 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의인 10명은 있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하나님과 협상하는 데 지쳐버렸을까. 만일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 숫자를 2명까지 낮췄다면 멸망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10명이 당시 한 가구의 구성원 숫자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숫자는 딱 한 가구를 나타내는 숫자였다. 그가 하나님과 마지막으로 협상했던 데드라인은 믿음이 바로 서 있는 딱 한 가구였다. 하나님은 한 가구만 믿음이 바로 서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소돔에 살았던 롯은 의인이었을까.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벧후 2:7)에는 의로운 자라고 나오지만, 그는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세상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의 딸들과 부인은 신앙이 없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셨다. 멸망을 막지 못했으니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실패한 것인가.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그 사람들의 실패일 뿐, 아브라함의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아주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썩었더라도 자기 신앙만 분명하고 자기 가정의 신앙만 제대로 지켜도 세상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중보기도는 위력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썩은 세상에 살더라도 자신의 믿음과 자녀들의 신앙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멸망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김서택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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