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타다의 도전이 눈물겨운 까닭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타다의 도전이 눈물겨운 까닭

입력 2019-06-14 04:03

실리콘밸리의 창업요람 우버도 두 손 들고 떠나야 했던 한국
카카오 택시는 성공했는데 카카오 카풀은 좌초하는 현실
규제·이해관계의 기득권 장벽 북유럽 순방에 허물어질까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기만 바랄 수밖에


2000년대 실리콘밸리는 ‘페이팔 마피아’가 움직였다고 한다. 전자결제시스템 업체 페이팔 출신의 기업인을 일컫는다. 이들은 창업 4년 만인 2002년 페이팔을 나스닥에 상장했고 곧바로 1조8000억원에 매각했다. 다들 거액을 쥐었는데 아직 너무 젊어서 각기 새로운 창업과 투자에 나섰다. 스티브 챈과 채드 헐리는 유튜브를 만들었고,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설립했으며, 피터 틸은 페이스북과 에어비엔비 같은 유망 벤처를 콕 집어내 투자했다. 닷컴 버블이 터져 잔뜩 위축됐던 실리콘밸리는 이들의 행보에 들썩였다. 떠오른 스타트업마다 페이팔 출신이 손댄 것임을 주목한 경제지 포천이 2007년 마피아란 별명을 붙여줬다. 한데 모여 마피아처럼 시가를 물고 인터뷰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 속 페이팔 마피아는 13명이었다.

이렇게 집단적 영향력을 발휘한 창업 마피아는 이후 한동안 눈에 띄지 않았다. IT 업계는 팡(FAANG)의 다섯 공룡 시대로 접어들었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뜻하는데,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흥미로운 현상을 찾아냈다. 차량공유업체 우버에서 독립한 이들이 차려 성공한 기업을 추려보니 34개나 됐다. 불과 10년의 짧은 역사를 감안하면 우버의 스타트업 파생률은 팡의 다섯 기업을 합한 것보다 높았다. 페이팔 이후 새로운 마피아의 등장을 목격한 실리콘밸리는 이들을 ‘우버 동창생(Uber Alumni)’이라 부르고 있다. 왜 우버일까. 세상을 바꾼 많은 혁신기업 중에서 구글도 애플도 아마존도 아니고 지난달에야 상장한 우버가 어떻게 창업의 요람이 됐을까.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IT 기업과 달랐다. 세상에 없던 검색엔진, 세상에 없던 스마트폰을 들고 블루오션을 공략한 구글·애플과 달리 우버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자동차에 도전했다. 페이스북은 수십억명이 가입한 뒤에야 가짜뉴스 규제가 시작됐지만, 우버는 이미 규제로 가득한 교통시장에서 기존 질서를 허물며 성장했다. 요즘 쇼핑 행태를 보면 대형마트보다 온라인 쇼핑몰이 골목상권 손님을 많이 빼앗을 텐데, 전통시장은 눈앞의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할 뿐 온라인 영업시간의 제한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마존이 이렇게 이해관계의 안전지대인 온라인 가상세계에서 원격으로 유통시장을 바꾸는 동안, 우버는 현실세계에 들어가 도시당국을 설득하고 택시업계와 협상하고 기사들과 씨름하며 일상을 바꿔왔다.

우버에는 팡 기업이 다 가진 ‘캠퍼스형 본사’가 없다. 팡의 비즈니스는 본사가 알고리즘을 결정하면 세계에 통용되는 식이어서 중앙 컨트롤타워가 필요하지만, 우버는 나라마다 제각각인 규제와 문화를 각개격파해야 하기에 지역 매니저에게 높은 자율권을 주는 분권형 조직을 갖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우버를 “픽셀이 아닌 피플을 다루는 기업”이라고 규정했다. 실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현실에 맞춰 사업모델을 구현하는 능력, 규제를 돌파하는 방법,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노하우를 체득한 우버맨들이 현실세계의 다른 영역에 뛰어들어 다른 규제에 도전한 것이 34개 동창생 기업이다. 우버의 창업엔진은 놀랍도록 치열한 비즈니스 백병전을 통해 만들어진 거였다.

이런 회사가 공룡이 된 지금, 세계는 둘로 나뉘었다. 우버 차량이 다니는 나라와 다니지 않는 나라. 다시 말해, 우버가 규제를 돌파해낸 나라와 그들의 백병전도 통하지 않을 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나라. 한국은 후자에 속한다. 창업엔진이라는 회사도 두 손을 들었고, 그래서 우버 동창생 같은 파생창업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에 스타트업 53곳이 동행했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됐거나 곧 된다는 배달의민족, 야놀자, 직방이 포함됐다. 한국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3인방, 어딘지 비슷하지 않은가. 온라인에서 기존 요식업자, 기존 숙박업자, 기존 임대업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사업모델의 골격이 같다. 이들과 똑같은 모델인 카카오 택시도 성공했다. 하지만 기존 업계의 이해관계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간 카카오 카풀은 우버가 그랬던 것처럼 좌초했다. 기존 숙박업을 활용하는 야놀자는 안착했는데, 새로운 숙박업을 창출하는 에어비앤비는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 택시와 카풀 사이, 야놀자와 에어비앤비 사이의 경계선은 한국 스타트업 기업인들에게 “이 선 넘으면 다쳐!” 하는 빨간 줄이 돼 있다.

문 대통령이 스타트업 강국 핀란드에서 “혁신과 충돌하는 기득권을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물었다. 청와대는 “차량공유, 인터넷은행 등에 반발을 경험한 고민이 담긴 질문”이라고 했다. 저 빨간 줄을 기득권으로 봤다는 뜻이다. 답을 들었을 테니 이제 달라질까.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정부 고위 인사는 이 줄을 ‘상생’이라 여기고, 국회의원들은 ‘표밭’ 경계선쯤으로 보는 현실이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저 타다처럼 어떻게든 선을 넘으려 시도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만약 한국서 해낸다면 세계 어디서든 해낼 수 있을 테니….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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