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창세기 4장 1~8절

입력 2019-06-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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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왜 받지 않으셨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물의 종류가 문제였다고 말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

가인의 예배가 받아들여 지지 않았던 까닭은 믿음으로 드린 예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란 어떤 예배일까요. 가인은 자신의 예배를 받아주시지 않은 하나님께 분노했습니다.(5절) 가인이 화를 낸 건 자신이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당연히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무심하게 땅의 소산을 제물로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받아들여 질 예배인데 특별히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 예배가 받아들여 지지 않자 화가 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히 나의 예배를 받지 않는다니.” 이런 마음이었겠죠.

믿음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것입니다. 즉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올바른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예배하면 하나님은 당연히 받아주신다”와 같은 태도는 예배를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나의 예배가 하나님께 받아들여 지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태도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을 쉽게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성공 여부는 내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의 참모습입니다.

아벨은 어떻습니까. 그가 완벽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며 예배했기 때문이죠. 예배를 위한 제물도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성공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예배한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돌아봅시다. 내가 예배에 참여하는 건 시작일뿐입니다. 가인의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아벨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배하는 우리가 모두 되길 바랍니다.

예배 순서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가 시작되면 여러 차례 기도합니다. 신실한 예배, 진정한 예배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당연히 받아들여 진다면 왜 이렇게 기도하겠습니까. 예배의 성공 여부가 하나님께 달려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아닌 우리한테 달려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각자의 소견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는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죄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깨집니다. 믿음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망가집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실패한 예배 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죄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당연히 받아들여 지는 예배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기 때문에 받아들여 지는 예배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존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배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최승근 목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1967년 미국인 선교사 라보도가 설립한 신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79년 대학원 과정을 신설했고 98년 지금의 이름으로 교명을 변경했습니다. 신학 전 분야에 걸쳐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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