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6월 18일] 생명에 삼키게 하신 은혜

국민일보

[가정예배 365-6월 18일] 생명에 삼키게 하신 은혜

입력 2019-06-1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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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큰 영화로신 주’ 35장(통 5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10절


말씀 :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가능한 죽음에 대해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초기 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속한 재림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생전에 주님이 오시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꾸 잃게 되면서 두려움에 휩싸였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바울 사도가 죽음에 대한 정리를 확실하게 해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든든히 붙잡아 줍니다.

바울 사도는 지상의 삶과 장차 천국에서 이루어질 삶을 집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막생활과 같다는 것이지요. 천막은 일시적으로는 자유롭고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겠지만 어두움이 오고 바람이 불면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격이나 풍성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계속 죄에 쫓기는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막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면 더 이상 죄의 유혹은 사라지고 없으며 그곳에서는 죄와 갈등을 겪지 않고 양심의 고통도 받지 않으며 탄식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는 이 세상 상태에서 하늘의 상태로 바뀌는 것을 ‘덧입는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사도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의 신앙은 현재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하늘의 상태로 이어지는 이 세상의 성도와 하나님 나라의 계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고 생명에 삼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산다고 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겠지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 결코 편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먹고 살아야 하고 긴장 상태에서 항상 죄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바울 사도는 끊임없이 유대인의 공격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는 “우리가 죽음에 이를 때 생명이 우리를 삼켜 버린다”는 너무나 놀라운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의 고통이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통해 구원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구원의 약속으로써 결코 하나님의 구원은 절대로 취소되거나 포기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에게는 더 완전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눈으로 그리스도를 직접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담대히 죽어서 주님 앞에 있는 것을 더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가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다 좋다’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것은 비록 현재의 상태는 다르지만 주님은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는 것과 죽는 것 중 어디에 더 신경을 써야 할까요. 장차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서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심판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것과 죽는 것 모두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 예수님, 이 세상의 삶과 천국의 삶을 집으로 비교해서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죽음이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삼키는 것인 만큼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 원장)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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