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7) 폭압정치와 기독교 박해 심해진 평양 떠나 서울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주선애 (7) 폭압정치와 기독교 박해 심해진 평양 떠나 서울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린 평양, 박해 심하고 기독교인들 저항 거세

입력 2019-06-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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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의 은인들 사진이다. 1945년쯤 촬영했다. 왼쪽부터 친구 명선성, 은사 임종호 선생님, 친구 이필숙.

1946년 7월 북한 땅에는 변화의 폭풍이 불어 닥쳤다. 소련에서 나온 김일성이 집권한 뒤 폭압정치가 시작됐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애국자들을 모두 잡아가는 등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지주와 기업가, 특히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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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만큼 기독교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김일성정권의 박해도 심했고 기독교인들의 저항도 거셌다. 끊임없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허가 없이는 어떤 집회도 할 수 없게 됐고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통제됐다. 남편 최기호 목사도 허가 없이 집회를 열었다가 잡혀 들어가 동평양경찰서에 수개월 동안 수감됐다. 최 목사는 쇠약해진 몸으로 석방됐고 우리 식구들은 연금 상태에 처해졌다. 목사 가족이라는 이유로 반동 세력으로 찍힌 것이다. 집 밖에는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늘 서성이며 감시하고 있었다.

평양 시내에는 커다란 사진과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 ‘위대한 수령님’이라 칭송하는 김일성의 사진과 미군들이 공산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흉측한 모습을 담은 포스터였다. 평양 거리는 억센 함경도 억양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거리에는 음산한 분위기와 공포가 감돌았다. 교인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고 남은 교인들은 쑥덕쑥덕 남쪽으로 피난 간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눴다.

우리 식구는 감시원들 때문에 다 같이 집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남한으로 가면 어머니는 최 목사와 함께 황해도로 휴양을 가는 척 위장하고 내려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살았던 황해도로 가서 수소문해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 서울에서 다시 모이는 것으로 세부적인 전략을 짰다. 만남의 장소는 서울 남산이었다.

나는 38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몰래 수소문해 한 팀을 만나 합류하기로 하고 강원도로 가는 안내자를 만났다. 혹시 보안원에게 들킬까 봐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어 여벌 옷도 챙기지 못하고 떠났다. 내 짐은 성경책과 산파 도구가 전부였다. ‘남한에 가면 생활 대책이 없을 테니 산파 도구라도 갖고 가야지’ 싶은 마음이었다.

옷이 너무 깨끗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당목 적삼에 일부러 재를 묻혀 노동자로 보이게 위장을 했다. 우리 일행은 강원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을 가서 어느 산골 역에 내렸다. 출구엔 이미 총을 멘 보안원이 서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워 검문을 하는데 갑자기 나를 지목하더니 보안서로 따라오라고 외쳤다.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되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요청을 한 뒤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아!’하고 번개같이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순간 회개해야 할 죄목이 떠올랐다. 산파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께 약속했던 게 영화필름처럼 선명하게 펼쳐졌다.

‘제가 취득할 산파 자격증으로 돈벌이를 하지 않겠습니다. 꼭 봉사를 위해서만 쓰겠습니다.’

그렇게 단단히 약속해놓고는 남한에서 굶게 될까 봐 산파 노릇을 할 생각으로 도구를 숨겨가는 모습을 하나님께선 분명히 보셨을 것이다.

‘하나님 자복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회개 기도를 하고 보따리에 숨겨 놓은 산파 도구를 똥통에 내던져 버렸다. 가벼워진 봇짐을 들고 보안원을 따라 일행 몇 사람과 함께 한 줄로 섰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맨 뒤에 따라가던 중 마음에 결단이 섰다. 바로 산 쪽으로 도망을 쳤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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