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예수는 정치적이다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예수는 정치적이다

입력 2019-06-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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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정치 공동체라는 말에 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떠들썩하다. 교회란 본디 신앙 공동체이지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교회가 ‘장망성’(멸망의 성읍, 사 19:18)인 이 세상일에 시시콜콜 나서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정치화이고 타락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에 열중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과연 교회는 정치 공동체일까.

교회의 정치성을 논하기 전에 예수는 정치적이었는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예수는 정치적이다. 그러나 정치가는 아니다.’ 예수가 정치적이라는 증거는 흘러넘친다. 로마 총독 빌라도와 제사장들, 바리새인들과의 거칠고 격렬했던 논쟁과 대결, 예수가 받았던 위협과 위험은 그분이 퍽 정치적이었음을 말한다. 살인해 옥에 갇힌 유명한 죄수 바라바를 대신할 만큼 요주의 인물이었다. 왕이라는 족보와 당신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한 것은 왕조 국가에서 반역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철두철미 정치적이고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불온했다.

예수는 그러나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분은 헤롯이나 로마 황제의 자리를 탐한 적이 결단코 없었다. 정치학에서 정치를 사회적 가치와 재화의 분배라고 정의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정치를 거절하셨다. 재산 분배를 둘러싸고 형제간의 갈등을 풀어달라는 말에 탐욕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공자와 달리 예수는 제자를 국가의 관료로 육성하지 않았고 파송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정치적 예수’가 아닌 ‘정치가 공자’를 따르려는 걸까.

먼저 토론과 논쟁에 있어서 양자가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각자 다른 의미로 ‘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빚는다. 그래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모든 문제도 언어 사용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모든 용어와 개념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주목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의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광야의 유혹과 십자가를 보면 된다. 광야 유혹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방법을 두고 벌이는 예수 자신의 내적 투쟁이었다. 우리가 광야에서의 예수와 마귀의 대결을 ‘광야 유혹’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예수도 마음이 끌렸다는 증좌이다. 예수도 십자가를 피하고 칼로 일어서고 싶었다. 그 유혹을 이겨내는 데 무려 40일이 걸렸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보듯이 공생애 내내 흔들렸다.

내적 고민이었을 뿐만 아니라 외적인 사탄의 유혹이기도 했다. 사탄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잘 안다. 할 일 많은 사탄이 40일 동안 예수 주변을 맴돌 리 없다. 사탄도 바쁘다. 안식이 없는 것은 사탄이지 않은가. 다만 교묘하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왕이니까 절대 권력을 행사하라고 은근히 꼬드기는 것이고 무력과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온 세계의 제왕임을 선언하라고 부추긴다.

예수의 대답은 십자가였다. 십자기(十字旗)를 만들어 타자를 매달아 놓지 않고, 십자가(十字架)에서 자신의 목과 몸을 매달았다. 십자가로 칼을 만들어 폭력의 무기로 삼아 타인을 희생하는 길을 거부했다. 십자가를 제단 삼아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는 자기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의 길을 걸으셨다. 헌데, 예수의 제자들이 폭력을 선동하고 칼과 무력으로 정권을 뒤집어엎자고 한다. 우리 또한 광야에서 시험받는 것은 아닐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를 외치며 교회는 종교적인 본업에 충실하겠다던 보수 기독교가 왜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지 의아하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세운 것이니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의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이 주장하지 않았던가.

희한한 점은 그 논리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는 쏙 들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복종을 설교할 건가. 이것은 예수의 정치일까. 특정한 정파적 정치일까. 우리는 예수의 제자일까. 정권과 정당의 제자일까.

김기현 목사(로고스교회)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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