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백 칼럼] 정년연장? 일자리 창출이 먼저다

국민일보

[김용백 칼럼] 정년연장? 일자리 창출이 먼저다

입력 2019-06-19 04:01

65세 정년연장은 초고령사회 경제사회적 안정 위한 것으로
논의 과정에서 갈등과 혼란을 줄이는 여건들을 마련해야
일자리 문제인만큼 정부로선 과감한 규제개혁과 혁신성장 통해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가 65세 정년연장을 먼저 얘기하며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급속한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면서 초고령사회에 닥칠 경제사회적 위기감 때문이다.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정도의 빠른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율(45%)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의 영향도 작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노년층에 대한 노동시장에서의 판단 기준, 사회적 인식 등이 상당히 바뀔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올해 안에 정년연장의 골격을 마련할 것처럼 적극적이다. 현재의 60세 정년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 일하는 연령을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모양이다. 고용노동부가 언급한 방안은 60세 이상 장년층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인건비 등을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60세 정년을 자발적으로 폐지한 기업, 정년을 연장한 기업, 정년퇴직자를 3개월 내 재고용한 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일본이 65세 정년제를 시행할 때 기업에 제시한 조건과 흡사하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고령 노동자들의 선택을 다양화하는 것, 정년연장을 하는 장년층과 신입하는 젊은층 간 세대갈등 해소 등이 핵심 과제다.

정년연장 논의가 빠르다고 나쁠 건 없다. 다만 적절한 시기가 아니거나 여건을 성숙시켜가지 못할 때 논의는 공허하고 혼란만 낳을 뿐이다. 60세 정년제는 2016년부터 시행해 2년 반이 됐지만 아직 정확한 실태조사나 분석은 없다. 고용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정년제 도입은 1인 이상 사업체 143만개 중 29만9000개로 전체의 20.3%에 머물렀다. 나머지 79.7%의 사업체는 도입하지 않았고 영세사업장이 많았다. 성과급제나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사 합의 사항이라 기업들이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효과, 기업과 노동자들의 인식이나 제도의 유연성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임금 구조와 고용 시스템은 60세 정년제 시행 이전이나 이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출생)와 베이비붐세대의 자녀들인 에코세대(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출생), 베이비붐세대(1955~63년 출생)가 일자리 다툼을 하는 건 난센스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해법 없이는 정년연장 논의는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체감실업률이 지난달 24.2%로 3월 24.1%, 4월 25.2%에 이어 높은 수준을 달리고 있다. 이런 ‘고용 절벽’ 상황에서 섣부른 논의는 청년층을 부정적으로 자극하게 된다.

한국에 앞서 저출생·고령화에 대응하고 있는 일본을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13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종업원이 희망하면 만 65세까지 일할 수 있게 했다. 정부는 기업에 정년연장, 정년 폐지, 계약사원 재고용 등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대신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도록 했다. 일본은 생산인구가 급격히 줄고 일자리는 늘어나는 시기에 65세 정년제를 시행하게 돼 별 문제가 없었다. 2012년 말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기업의 신입사원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그 기조 속에 일본 정부는 만 70세 정년을 추진 중이다.

결국 일자리를 늘리고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새로운 청년층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답이다. 이럴 경우 청년층은 선호하는 새 일자리로, 고령자들은 자기의 기술력과 생산력에 맞는 일자리로 가면 된다. 일자리 만들기에 역부족인 정부로선 장년층이 기존 일자리에 머무는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택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동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안정되고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와는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경영 악화는 사업을 접거나 일자리를 줄이게 하고 있다. 규제개혁으로 신산업 육성과 혁신성장을 꾀한다면서도 실제로 나아진 건 별로 없다. 차량공유나 승차공유 서비스 등 이해가 충돌하고 논란이 커질 사안들은 외면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민간이 스스로 활로를 모색하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견인하기는커녕 과거의 연장선에서 맴돌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기술에 기반한 서비스업은 일자리를 만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서비스업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첨단 산업마저 부침이 빨라지는 시대다. 일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정년제는 이런 흐름에 맞지 않다. 단계적 정년연장의 로드맵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정년제를 폐지하거나, 기업의 지불능력 또는 노동자의 노동능력에 따라 일자리 은퇴를 결정하는 제도를 향한 진지한 논의와 노력이 바람직하다.

김용백 논설위원 yb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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