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벌써 1년”… 수원에 자리잡은 ‘예멘 인도적 체류자’ 압둘라와 케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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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피플] “벌써 1년”… 수원에 자리잡은 ‘예멘 인도적 체류자’ 압둘라와 케밥집

섬김·사랑, 세트 요리가 됐습니다

입력 2019-06-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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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제주도로 입국한 뒤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압둘라씨가 전동 케밥커팅기를 사용해 케밥을 만들고 있다. 수원=강민석 선임기자

“텔러(그릇 케밥) 둘, 되너(치아바타 케밥) 하나, 되너는 세트예요.”

낮 12시를 넘기자 33㎡(10평) 남짓한 케밥 가게에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 30분 만에 2인용 테이블 5개가 가득 찼다. 곱슬머리에 카키색 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능숙하게 전동 케밥 커터를 들고 기둥 모양으로 뭉쳐진 4㎏짜리 닭다리살을 잘라냈다. 잠시 후 청년은 능숙하게 하얀 치아바타 빵을 갈라 토마토 피클 당근 양파 양상추를 보기 좋게 얹어냈다.

19일 경기도 수원 ‘YD 케밥하우스’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홍주민(57) 목사와 예멘 청년 압둘라(23)가 함께 일한다. 이들은 지난달 16일부터 한국디아코니아협동조합(이사장 김상기 박사)과 함께 오피스텔 상가를 임차해 케밥을 팔기 시작했다. YD는 예멘(Yemen)과 ‘섬김’이라는 뜻의 헬라어 ‘디아코니아(Diaconia)’의 알파벳 첫글자를 땄다.

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오른쪽)와 압둘라씨가 케밥기계 앞에 서있다.

홍 목사가 예멘 청년과 함께 가게를 열겠다는 소식에 주변 사람들도 힘을 보탰다. 전주 안디옥교회(오성준 목사)는 바자회 수익금 3000만원을 기부했다.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케밥 가게를 운영하는 선교사 부부는 조리법을 가르쳐줬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사장은 치아바타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문을 연 가게에서 인건비 등을 지출하고 남는 수익은 난민 기금으로 쓰인다.

3년 전 내전을 피해 큰형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도피한 압둘라는 지난해 5월 홀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어선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5개월 뒤 정부로부터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이 경우 1년 단위로 비자(G1-6)를 갱신하며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나온 후 시멘트와 김치 공장들을 떠돌던 그는 경기도 오산에서 예멘 체류자 20여명과 함께 지내던 홍 목사를 만나 수원에 정착했다.

압둘라는 한국 생활에서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집과 고향이 그립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기 전에는 계약서를 내민 업주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근로계약서도 쓰고 세금도 조금이나마 낼 수 있게 됐다”면서 “평화가 돌아오면 고향에 돌아가 예전처럼 형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며 웃었다.

주변 사람들은 압둘라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케밥을 좋아하는 상가 미용실 원장은 금세 단골이 됐다. 오피스텔에 사는 젊은이들도 등산 가기 전 포장 주문을 했다. 인근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박시원(65)씨는 “압둘라가 예멘 사람인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착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케밥을 크게 베어 물었다.

홍 목사는 이들을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게 교회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약자 중의 약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들을 고향에 잘 돌려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자 디아코니아다”라고 말했다.

케밥하우스는 앞으로 배달대행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해 영업을 강화할 예정이다. 다른 체류자들과 함께 점포를 더 낼 계획도 갖고 있다.

수원=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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