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어선 3일간 ‘대기’… 덮고 보는 군, 4일 만에 “경계 실패”

국민일보

북 어선 3일간 ‘대기’… 덮고 보는 군, 4일 만에 “경계 실패”

처음부터 귀순 의도 갖고 출항… 야권선 정경두 국방 경질 주장

입력 2019-06-20 04:03 수정 2019-06-20 10:15
북한 목선이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에 접안해 있는 모습. 당초 배의 접안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군은 19일 경계 실패를 인정했다. KBS 제공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항에서 발견된 북한 목선은 표류하다 발견된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남하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이런 움직임을 파악조차 못했던 군 당국은 경계실패 책임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 목선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 부두에 정박할 때까지 3일간 우리 영해에 머무른 것으로 드러났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28마력짜리 엔진을 단 북한 목선은 지난 9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항했다. 그 다음 날 동해 NLL 북측에서 오징어를 잡는 북한 어선군에 합류했다. 목선에 설치된 위성항법장치(GPS)를 분석한 결과, 이 배의 선원들은 11~12일 위장조업을 한 후 어선군을 이탈했다.

이 배는 12일 오후 9시쯤 NLL을 넘었다. 이어 13일 오전 6시쯤 울릉도 동북쪽 55㎞ 해상에서 엔진을 끈 상태로 머무르다가 같은 날 오후 8시쯤 이동했다. 14일 오후 9시쯤 삼척항 동쪽 3.7∼5.5㎞ 해역에 접근한 뒤 다시 엔진을 끈 채 대기했다. 날이 밝은 뒤 이동해 15일 오전 6시22분쯤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에 정박용 밧줄을 묶어 접안했다.

민간인으로 파악된 북한 선원 4명 중 1명은 인민복, 1명은 얼룩무늬 전투복, 나머지 2명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이 중 1명은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우리 주민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선원 2명의 귀순 사유를 보고받은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은 “선장은 가정불화가 있었고, 다른 선원은 한국 영화를 시청한 혐의로 국가보위성(북한 비밀경찰) 조사를 받고 처벌을 두려워하던 중이었다”고 전했다. 북으로 돌아간 나머지 2명에 대해선 “선장이 가니까 휩쓸려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선원을 수상하게 여긴 우리 주민이 경찰에 신고한 이후에야 군과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앞서 15일 오전 6시15분쯤 삼척항 인근 영상감시체계에 북한 목선이 포착됐지만 감시 요원들은 한국 어선이라고 판단했다.

남하 과정에 대한 군 당국의 설명은 17일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당초 합참은 “해류와 비슷한 속도로 떠내려 오니까 식별이 안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목선이 엔진 동력으로 삼척항 부두에까지 접안한 사실을 아예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합참은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도 했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정경두(왼쪽 두 번째)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맨 왼쪽) 합참의장. 김지훈 기자

군 당국은 ‘대기 귀순’ 4일 만에 경계실패를 인정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경계작전에 실패가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의 축소·은폐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군은 2012년 북한군 병사가 동부전선 철책을 끊고 넘어온 ‘노크 귀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도 “CCTV로 확인했다”는 거짓 보고를 한 적이 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원인 규명 과정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엄중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안보가 이렇게 숭숭 뚫리는 이유는 잘못된 판문점 선언과 9·19군사합의 때문”이라며 정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경택 이형민 기자 ptyx@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