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피사체는 자신이 일했던 중공업 단지… 무정함이 아닌 따뜻함을 담다

국민일보

[손영옥의 지금, 미술] 피사체는 자신이 일했던 중공업 단지… 무정함이 아닌 따뜻함을 담다

(28) 조춘만 사진작가와 기계

입력 2019-06-25 17:57 수정 2019-06-26 19:45
조춘만 작가는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춘만, 인더스트리 부산’을 통해 부산 산업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진은 야간에 찍은 조선소의 모습. 조명을 받은 기계 설비의 붉은색, 노란색, 흰색이 주는 강렬함에서 부산의 심장이 벌떡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런 어마어마한 배를 만들었어요. 제 나이 열여덟 살 때요. 20여년 후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데 어느 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중공업 단지 그 자체가 예술로 다가오더라고요.”

지난달 31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사하구 다대동의 중견 조선소를 찍은 사진에 관해 설명하는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운동장만 한 선박도 번쩍 들어올려 바다로 옮겼을 노란 크레인이 밤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고, 그 옆에는 붉은색 몸체를 한 선박이 야간 조명을 받으며 거대한 괴물처럼 엎드려 있는 사진이었다.

전시장엔 컨테이너가 야적된 항구 풍경에서 기계 소리 윙윙대는 공장 내부의 속살까지 부산의 다양한 산업 현장을 담은 작품들이 나왔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중견 사진작가에게 부산을 담게 하는 부산프로젝트의 하나로 그를 초대했다. ‘조춘만, 인더스트리 부산’(8월 7일까지)전을 보러 부산에 가 작가를 만났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조춘만 작가.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조춘만(63)은 오로지 기계만 찍어 독보적 위치를 구축한 사진작가다. 울산의 현대중공업과 석유화학단지, 포항의 제철공장 등 중공업만 카메라에 담아왔다. 사진작가로서뿐 아니라 첫 밥벌이도 기계와 더불어 시작됐다는 점에서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대구시 달성의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 18세에 울산으로 건너가 현대중공업에 취직했다. 기계라곤 손수레가 전부였던 산골에서 자란 그가 배관용접공으로 일하며 선박 건조 산업 현장에서 만난 기계는 중후장대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그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다.

결혼한 이후 중동에서 외화벌이 산업일꾼이 돼 돈을 좀 번 뒤에는 울산에서 차례로 슈퍼마켓과 식당을 차려 생업을 이어갔다. 1년 365일 거의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죽어라 일만 했던 지독한 밥벌이의 시절, 사진은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동네 복지회관에서 사진을 배운 뒤 일요 사진작가가 된 것이다. 마흔이 넘어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정식으로 사진을 전공했다.

“인생을 거꾸로 살았지요. 남들이 학교 다닐 땐 돈 벌고, 남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대학을 다닌 거지요. 이왕 늦어진 거, 가장 즐거운 걸 하자, 그런 맘이 들더군요. 그게 사진이더라고요.”

사진작가에겐 뭘 찍느냐가 중요하다. 대구 경일대 사진학과에 다니며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청춘의 뜨거운 피를 바쳤던 울산 현대중공업이었다.

기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파에게 기계는 미래에 대한 낙관의 상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이성이 만든 문명, 즉 기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은 혐오였다. 조춘만이 찍은 산업현장의 기계는 인간 그 자체다. 맥박이 고동친다. 당당하고 힘차다. 무정한 기계가 아니라 피가 흐르는 따뜻한 기계로의 변신이다. 기계에 대한 경외감이 강한 그는 “기계가 없었다면 지금 제가 여기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그의 사진 작업은 공장을 외부에서 찍는 것이었다. 거대 중공업 시설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것들은 거리가 적절히 떨어져야만 전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에 부산을 찍으면서는 달라졌다. 작가는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컨테이너가 야적된 부두에 ‘받들어 총’ 자세로 서 있는 거인 같은 갠트리 크레인이 항구도시 부산의 이정표처럼 전시장 들머리에 전시돼 있긴 하지만, 작품들은 이내 부산의 다양한 공장들의 내부를 보여준다. 기계설비에 들어가는 고무벨트들이 국숫발처럼 늘어져 있는가 하면, 대형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 축을 만들기 위해 프레스로 빨갛게 달아오른 철강소재를 누르고 두드리는 공정 등이 거인의 내장을 보여주듯 생생하면서도 디테일하다. 공장의 내부로 들어가니 자연히 기계와 함께 사람도 등장하지만, 그는 사람과 사물을 똑같이 다룬다. 기계를 사람의 부속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70~80년대 수출 한국을 짊어진 산업일꾼으로 살아온 그는 마치 경마 기수가 말을 아끼듯 기계를 바라본다.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강홍구 고은사진미술관 관장은 “중공업이 대지를 딛고 우뚝 선 존재감”이라고 평한다. 기계를 향한 조 작가의 시선엔 기계와 부대끼며 산업화 시대를 통과해온 장년 세대 특유의 자부심이 어려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5G 시대가 왔다고 세상은 호들갑을 떤다. 그러더라도 2차 산업으로 불리는 육중한 기계의 제조업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그가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본 미술비평가 이영준씨는 “관조하고 분석하는 시선이 아니라 대상이 너무 맛있어서 집어삼키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고 전한다. “기계,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포효하는 기계는 살아 있다.” 조춘만의 작품 속 기계도 그렇게 살아있다.

부산=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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